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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29. 2022

실수에 관대해지기 위한 말 한마디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삶은 그렇게 바뀌어 간다.



그럴 수도 있지


누구에게나 각자의 생각이 있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이 존재한다.
누구나 그 생각을 읽고 그 삶을 이해할 수 없기에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분명히 다양성 존중에 대한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람들에게 예민해지고 화가 나는 날들이 많아졌다.


주변을 통해 "화가 많아졌어" 또는 "왜 이렇게 예민해" 라는 말을 자주 듣기 시작했고, 상대방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많이 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단점으로 비춰지는 행동들이 나만의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문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하고 대안을 찾아가던 내가 대화를 피하거나 상대를 외면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내가 그런 상태가 되었음을 인지했을 땐 이미 불편함과 함께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하는 스스로가 더 불편해졌고, 계속해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건 타인이 아닌 나의 마음가짐의 문제임을 난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행동을 다름으로써 잘 받아들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반복하고 고민했다.


고민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예전 대학교 다닐 때, 한 선배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럴 수도 있지"


그 선배는 항상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해는 안가지만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별거 아닌 한 마디 같지만 그 말에는 "싫어", "안돼" 등의 저항이 아닌 '일부 공감'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꼈고, 관계로 인해 마음이 불안하거나 불편할 때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한 번 가라앉히고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한편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외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며 모든 일에 부딪치는 것보다 때론 이렇게 지나치는 것이 하나의 상호 감정 이해를 위한 방법이 될 때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상대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일 수 있지만, 사실 본질은 불안에 허덕이지 않고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나를 위함임을 깨달은 순간 난 더욱더 누구나 어떠한 문제에 대해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넓혀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나’에 대한 관대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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