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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족추장 Oct 10. 2019

가족캠핑, 긴장과 이완의 대환장파티

육아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남편과 춤을

남편은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다. 하지만 때때로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의 파이터이기도 하다. 남친이 아닌 남편과의 여행이란 언제나 아이들 동반되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주말 캠핑이 사실은 육아의 연장선일 뿐이었다는 뻔한 진실을 깨닫게 되면 다시 한번 스스로의 처지를 깨닫고 절망한다. 분명 쉬러 온 여행인데 우리 두 사람 누구도 쉬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더 여유로운 캠퍼가 될 수 있었을까?


일주일 내내 회사 일로 바빴던 남편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진 신경이 채 이완되지 못한 채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나 역시 엄마로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부대끼다 보니 일주일치만큼 사나워진 상태다.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고, 캠핑 역시 해치워야 할 과제 다름없다.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짐 더미에 걸려 자꾸 넘어지려는 아이 앞에선 그 어떤 부모도 소극적일 수 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우리의 손과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들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불안에 피로를 느끼며 텐트 밖으로 도망치곤 다. 메슈 드 어베이투어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캠핑은 '동사'였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캠핑 초기에 항상 화기애애하게 불꽃 싸움을 하다가 캠핑의 말미에는 '다음엔 절대 그러지 말자'며 다시 끈끈한 아군이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가족여행이라는 게 늘 그렇다지만, 자연에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더 진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온다. 이 괴상한 과정을 버티지 못하면 결국 이웃 텐트에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부부싸움을 하고 그 모든 짐을 다시 차 트렁크에 쑤셔 넣어야 하는 불상사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가족캠핑을 와서 단 10분 만에 짐을 도로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가족도 봤다. 낯선 곳에,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말 안 듣는 배우자와 있다는 건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인지도 모르겠다.


캠핑 격무에 뻗어버린 남편 © 둔족추장


놀러 왔는데 육아의 연장이라니 너무합니다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책임감과 긴장


자연 속에 풀어놓은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 평소 매사에 진취적이고 낙천적인 남편조차도 낯선 환경이 만드는 긴장감에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생소한 장애물들 앞에서 겁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향해 남편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참지 못한 내가 소리를 지르고 만다. "아, 이제 그만 좀 해! 애들이 제대로 놀지를 못하잖아!" 평소엔 같은 육아관을 공유하던 부부라도 극한의 상황에 던져지면 더 이상 점잖은 토론자가 될 수 없다. 각자의 속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던 고집과 상대에 대한 불만이 가감 없이 튀어나온다. 남편도 한 마디 쏘아붙인다. "그럼 애들이 위험한데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전쟁의 시작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어른이 더 서툴다. 도시에서 가져온 긴장과 낯선 환경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긴장이 합쳐지면 어쨌든 일거리가 많은 캠핑 초기에는 서로 날카로운 대립을 피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벌써 탐색과 적응을 끝내고 잘 노는데 어른들은 아직 도시와 자연에 한 발씩을 걸치고 있다. 북새통을 떨며 텐트를 치고 밥을 만들어 먹고 애들을 보살피고 나면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잘 시간이 다가온다. 캠핑의 첫날은 언제나 자연을 즐길 여유가 없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든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남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한심해 보여 한마디 한다. "여기까지 와서 쉬지도 못하고 뭐 하는 거야? 이젠 좀 앉아서 자연을 즐겨." 하지만 이 말을 하면서도 분명 내일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떠올라 헛웃음을 짓는다. 나는 분명 다음날 아침이면 겨우 여유를 찾은 채 자연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이렇게 안 움직여? 나 바쁜 거 안 보여? 어서어서 움직이란 말이야!" 남편 입장에서는 역시 환장할 노릇이다.


여유는 먹는 건가요 © 둔족추장



긴장을 이완시키는 부부의 호흡
가족캠핑은 부부가 추는 왈츠


파티에는 춤이 필요하다. 특히 모두가 극도로 긴장된 상태의 대환장 육아 파티에서는 더욱. 아이들은 이미 '춤'이 가진 효능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몸으로 긴장을 푸는 데는 이미 달인들이다. 텐트가 펴지면 텐트 안에서 춤을 추고, 불이 피워지면 불 옆에서 춤을 춘다. 끊임없이 떠들고 웃고 움직인다. 유머와 웃음이 작렬하며 흥이 우주 끝까지 솟구친다. 사바나의 초식 동물들은 맹수에게 쫓기고 나면 항상 온몸을 털며 긴장을 털어낸다. 매 순간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속에 본능적으로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바나의 동물들처럼 본능의 힘으로 긴장을 이겨낸다.


그에 반해 우리 어른들은 캠핑장에서의 긴장을 오직 먹는 것으로 해소한다. 끊임없이 술과 음식을 뱃속으로 밀어 넣으며, 술에 취하고 소화불량에 걸리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고 만족한다. 긴장이 풀린 건지 눈이 풀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긴장해소 방식에 비하면 매우 물질 의존적인 임시변통이다. 아주 오래전 술의 신 마커스가 축제를 열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뻘쭘한 분위기를 면해보기 위해 술에 취하기 전 춤부터 췄을 것이다. 손을 잡고 몸을 부딪히고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긴장을 함께 날려 보내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건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꼭 3박자 스텝으로 추는 몸의 춤이 아니더라도, 의식적으로나마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긴장 해소의 달인들 © 둔족추장



남편과 근 10년을 같이 살면서 느낀 유일한 교훈은 '남편보다 날 잘 아는 남자는 없다'라는 사실이다. 모르긴 해도 남편 역시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서로가 언제 긴장하고, 긴장을 하면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방식으로 긴장을 해소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이제 함께 호흡을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파트너십은 충분히 갖추게 되지 않았을까?


함께 춤을 추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무대에 올라서야만 가능하다. 캠핑장에 들어서며 교환하는 눈빛에는 스텝이 꼬여도 비웃거나 화내지 않겠다는 약속이 들어있어야만 한다. 분업과 협업으로 재빠르게 사이트를 구축하는 와중에도 서로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기로 한다. 육아의 기준에 있어서도 사전에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흥이 폭발하는 가운데에서도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가족의 규칙을 아이들과 만드는 것도 좋겠다. 무엇보다 부부만의 고급 유머는 춤의 완성도를 높이는 최고의 가점 기술이다.


가족끼리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고? 부부여야만 출 수 있는 춤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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