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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족추장 Aug 28. 2019

학원 대신 캠핑, 가족유랑단

주말 캠핑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란 부모 성장기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해 캠핑을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날씨와 불을 배우고, 산과 들을 마음대로 누비고 돌아다니는 것을 통해 든든한 배짱과 용기를 갖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캠핑 여행에 데리고 다닌다. (중략) 캠핑은 주말 동안만이라도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디지털 영역의 끝없는 주의 산만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캠핑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갖가지 역경과 제약, 현대적 미디어에 대한 욕구로부터의 자유는 창의적인 개성과 인격을 형성시킨다.

- 메슈 드 어베이투어 <캠핑이란 무엇인가(The art of Camping)>


둘째 아이가 지은 나무집. 캠핑 사이트의 원초적 형태. © 둔족추장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과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주말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첫째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무렵부터일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대개 자연이었다. 한가로운 나무 그늘 아래의 모래밭,  또는 소나무 잎이 폭신하게 깔린 숲 속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아이들은 넘어져도 울지 않고 심심하다고 보채지 않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잘 놀았다. 그곳엔  위험한 차들과 딱딱한 보도블록, 갑갑하고 뾰족한 가구들, 공기의 흐름을 가둬놓는 콘크리트 벽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자연은 편안하고 드넓게 아이들을 품어주었다. 아이들은 돌과 나뭇가지를 주워 놀며 수를 익혔고, 풀벌레와 새소리를 통해 음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는 무사시의 명언이 떠오를 무렵 우린 캠핑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자연 속에 몸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모든 게 실수 투성이었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챙겨야 할 필수적인 물건을 안 가져오거나 남편과 손발이 안 맞아 번번이 짜증을 내고 싸웠던 것은 그나마 작은 시련이었다. 텐트의 펙을 엉터리로 박아 강풍에 텐트가 날아갈 뻔하거나 간밤에 너무 추워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캠핑이 엄청난 고행으로 느껴졌을 땐 이미 우린 문명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대개 모든 고난을 돌이킬 수 없이 견뎌야 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것이 캠핑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문명 밖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캠핑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비밀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캠핑을 떠난다. 불빛 없는 캄캄한 밤하늘과 쏟아지는 별들을 보기 위해, 새벽녘 숲을 휘감는 안개의 축축한 감촉을 느끼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녹여주는 장작불의 향내음을 맡기 위해.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우리의 대화 유대를 위해 다시 떠나게 된다.  


생에 첫 감각을 체험하기 위해
잃어버린 야성과 모험심을 찾기 위해
학원비를 아껴 야생으로 떠난 유랑



어느 날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다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 아마도 '엄마야 누나야'라는 노래를 불러줄 타임이었을 텐데 그동안 잠자코 듣기만 하던 둘째 호야가 물었다. "엄마 금모래빛은 어떤 색이야? 갈잎의 노래는?"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반짝이는 금모래빛과 갈잎의 노래를. 하지만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우리 한번 보러 가보자, 들으러 가보자"라고 말할 수 밖에는. 접 자연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고 들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비밀이지 않은가.


그때부터 학원비를 아껴 주말 캠핑 비용을 마련했다. 학원은 앞으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지만, 생에 첫 감각은 지금이 아니면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모험을 하려 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모험'이란 '위험을 무릅씀' 또는 '될지 안 될지 확실하지 않음에도 덮어놓고 하여 봄'의 의미를 갖는다. 자기가 하려는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용기를 내어 해 본다는 뜻이다. 학원이 인생을 담보해줄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동안 아이들의 성장을 경쟁의 자본에 맡겨온 것은 아닌지. 어쩌면 우리는 도시의 안정되고 건조한 '보통의 삶'을 위해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야성과 모험'의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모험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계획과 용기,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모험을 시작하기 전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충분히 준비해서 위험을 면하고, 만에 하나 부딪힌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고, 불가피한 상황을 지혜롭게 견디는 과정이 모험이다. 정작 우리 인생에 필요한 건 남을 이기는 경쟁이 아닌 나를 이기는 모험일 텐데, 왜 우린 '모험 학원'을 보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걸까.


자연은 스승, 캠핑은 배움터
유랑육아는 자연 속에 사는 생활 육아
아이뿐 아니라 부모 성장 계기 되기를



자연이 아이들의 가장 좋은 스승이라면 캠핑은 아이들의 가장 좋은 배움터다. 어디 아이들뿐만이겠는가. 일단 어른들의 손에서 핸드폰을 떼 놓는 것만 해도 캠핑의 순기능은 충분하다. 분주히 몸을 움직여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소소한  행위들을 통해 나는 복잡하고 추상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의 일상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감각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처음의 서툴렀던 체계는 점차 정돈되어가고 자연을 즐기고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다. 그러나 이런 변화 안에서 다른 누구보다 행복했던 건 역시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캠핑은 여느 여행과는 다른 호흡이 있다. 캠핑은 그곳에 잠시지만 '사는 것'과 같아서 한 장소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긴 호흡에 잘 들어맞는 여행 방식이다. 한 곳에 정착해 머물며 그곳의 자연을 느끼고 생각의 지평을 늘려갈 수 있는 여유가 충분히 주어진다. 래서 그동안 우리 부부가 해왔던 '유랑 육아'는 일반적인 여행 육아와는 조금 다르다. 잠깐이라도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아본다는 의미가 더 진한 생활 육아다. 리고 여기에 쓰는 글들은 육아 조언이 아니라, 부모로서 우리가 자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기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건만 만들어진다면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자연으로 캠핑을 떠날 것이다. 엉덩이가 특별히 큰 '둔족'의 추장으로서 건, 호 두 명의 어린 영혼이 자연의 땅에 뿌리내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남편 내 안의 어린아이 역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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