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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령 Oct 02. 2019

그래도 집을 들고 유랑하는 이유

텐트, 마음의 아이가 찾은 태초의 안식처

주말마다 자연 속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대단하다. 귀찮게 그걸 어떻게 해? 힘들지 않아?" 그러게 왜 우린 매 주말마다 귀찮고 힘든 일을 반복하며 사는 걸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주말의 대부분을 안락한 집 소파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깐 바람을 쐬러 집 앞 쇼핑몰을 들리던지 영화관을 찾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근처 교외로 피크닉을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먼 길을 떠나 불편한 노지에 텐트를 치고 짐을 옮기며 고행을 자처하려고 하는가. 그들 눈에는 우리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를 '욜로'라며 비웃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는 매 주말 도시의 집을 떠나 자연의 집으로 간다.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에 최선의 위로와 활력을 주는 쉼터가 는 것을  때문이다. 자연 속에 터를 잡고 텐트를 세우고 살림을 차리고 밥을 짓고 잠을 자는 든 행위가 우리에겐 어떤 의식과도 같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환기의 의식, 일주일간 쌓였던 모든 정신적 노폐물을 내보내는 배출의 의식이랄까. 복잡한 기계처럼 움직이던 관성의 몽롱함에서 깨어나 모든 신경이 또렷해지며 기지개를 하는 기분이다. 생활은 단순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말하자면 평소의 멕시멀 라이프에서 벗어나 미니멀 라이프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최고의 스위치인 셈이다.  집을 옮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무리한 욕심을 버리고 가짓수를 줄이면 단출한 살림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 나는  '단순함'이 캠핑 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허술한 그늘막 텐트 하나라도 자연 속에선 충분히 위안이 된다. c.둔족추장


농업인에 밀려 사라진
유목민의 집을 닮은 텐트


텐트는 수렵과 채집, 방목을 하며 옮겨다니는 유목민의 집과 닮았다. 유목민들은 여기저기 식량을 찾아 옮겨 다녀야 기 때문에 식량을 저장하기도 어려워서 필요한 만큼의 을 소유한다. 재도구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 구성되고, 언제든 근거지를 옮길 수 있도록 집의 재료나 설계도 최대한 단순함을 추구한다. 가령 이누이트들은 1년에 두어 번 이동생활을 하는데 계절에 따라 집 짓는 방식도 다르다. 이들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겨울에는 이글루를, 여름에는 가죽 집을 짓는다.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불과 몇 시간 집을 허물고 재료들을 길 위에 둔 채 다시 먼 길을 서둘러 떠난다.


하지만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후 인간은 농사를 지어 대량의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움직일 필요가 없었을뿐더러 움직여선 안 됐다. 씨를 뿌린 식물이 자라나는 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고 무엇보다 그 수확물을 저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는 식량이 생겨나면서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겼고, 계급과 사회, 경제와 무역 그리고 전쟁이 생겨났다. 농업인들은 주변의 유목민들을 빠르게 점령해갔다. 동굴 형태를 본떠 둥글거나 타원형의 형태를 띠던 인류의 집도 농업혁명이라는 정신적 혁명을 거치며 네모 반듯하고 획일적인 형태의 평면도를 가지게 된다.


현대의 텐트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변해왔다. 가족들이 둥근 원을 그리듯 모여 앉아 쉴 수 있는 피 텐트는 환기 구멍이 천장에 뚫려 있어서 텐트 안에서도 불을 피울 수 있다. 현재 다수가 사용하는 돔형의 텐트는 마치 현대인의 집을 모방한 듯 거실 역할을 하는 전실과 침실 역할을 하는 내실이 구분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루프탑 텐트는 자동차의 지붕에 텐트를 설치한 것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독립된 침실 공간이 나오는 식이다. 이밖에도 더운 여름철에는 개방감을 극대화한 쉘터나 타프가 이용되기도 하고, 백패킹족을 위한 경량의 1인용 침 텐트나 산악 캠퍼들을 위한 행잉 텐트도 등장했다. 트레일러나 모터홈(캠핑카)은 유목민의 텐트에서 기동성과 저장성이 가장 극대화된 형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캠핑의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텐트 생활로 돌아오는 사용자들도 늘고 있다. 


루프탑 텐트로 아이들의 다락방이 생겼다. c. 둔족추장


최초의 '육아실'이자 모태를 상징하는 텐트
잃어버린 안식처를 찾는 마음의 아이들   


캠핑은 어쩌면 잃어버린 유목 생활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한 곳에 정박해 이동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말이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유목인의 집을 모방한 텐트에서 지내며 일주일간의 결핍을 만족시킨다. 지나친 과잉은 결국 또다른 결핍을 부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계급사회 경제활동에서 지친 이들이 모든 현대적 산물을 뒤로하고 빈 몸으로 태초의 안식처를 찾아오는 것이다. '집'의 기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을 협력적 양육자로 바라보는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에 따르면 '육아실'이 인간 집의 기원을 알 수 있다. 텐트는 집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서, 어쩌면 현대인들의 캠핑에 대한 갈망은 원시적 '육아실'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텐트는 태초의 안식처로서 아늑하고 따뜻한 '모태'를 상징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텐트를 좋아한다. 텐트가 아니더라도 들은 뭔가 작고 폐쇄된 공간에 환호한다. 어릴 적 사진첩을 보면 꼭 몇 장쯤은 집안의 구석에 숨어 들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찍힌 사진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불 텐트, 박스 집, 다락방, 커튼 뒤와 같자기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틈을 좋아한다. 이런 특성은 아이들이 커 가면서 점차 사라지는 것 같 보이지만 사춘기에 들어서 또다시 자기만의 방을 찾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본능이 작용한다는 반증이다.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과거에 가장 평온하고 아늑하게 느꼈던 엄마의 뱃속에 대한 회귀본능에 따라 구석의 공간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세계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안정과 안식을 주는 특별한 자기만의 영역 말이다.


어른들에게 안식처가 되는 자연의 집이 아이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c.둔족추장


집은 이러한 아이들만의 사적 영역이 물리적으로 확장된 공간이다. 아이들이 학교나 놀이터 같은 공공의 사회에서 돌아와 쉬는 공간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원형의 아이는 피곤하고 불안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마음 놓고 쉴 만한 자신만의 공간을 갈망한다. 그것이 도시 집의 작은 테라스 정원이든, 좋아하는 책을 가득 넣어둔 서재든, 작은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지하실이든. 그렇다면 왜 우리 부부의 집에서안식을 찾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사회의 긴장이 집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은 그런 사소한 긴장쯤은 품고 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조차도 끊어내고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그래서 일상과 단절된(cut off) 자연 속으로 들어가 모태와 같은 안식처 텐트를 세우는(build in)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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