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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브로 박상훈 Sep 05. 2021

작은 기업의 브랜딩

제품에 담긴 생각이 곧 마케팅 메시지가 됩니다.

창업자가 제품을 만드는 동기가 명확하면 마케팅 전략을 잡기가 쉬워집니다. 그 동기가 제품에 제대로 반영되면 전략을 넘어 실행까지 쉬워집니다. 그 동기가 선한 영향력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면, 마케팅 비용은 반의 반으로 줄어듭니다. 


창업자의 바른 생각을 제품에 잘 녹이면 랜딩페이지를 만들거나 광고 카피를 쓰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지금은 작은 기업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를 제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와이즐리'라는 브랜드입니다.  와이즐리의 목표는 확고합니다. 


'불합리한 시장을 바꾸겠다.'  


시작은 면도기였습니다. 면도날은 비쌉니다. 모든 남자가 써야 하는 제품임에도 원가에 비해 많이 비쌉니다. 독과점이 오래 지속된 시장이기 때문이죠. 와이즐리는 이런 면도기 시장을 불합리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면도기를 만들었습니다. 동기입니다.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면도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일단 원가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좋은 면도기'를 만든다면서 원가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통마진을 줄여야 하고(D2C), 비싼 연예인을 모델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정기배송 서비스를 제공해 사람들이 많은 양을 구매하게 만들면 가격을 또 한 번 낮출 기회가 생기죠.(대량생산) 와이즐리는 이걸 다 해냈고, 동기를 제품에 잘 녹였습니다. (미국에 이미 존재하는 모델을 따라 했다고 해도, 어쨌든 그걸 유능하게 실행했습니다. 실행을 해낸 게 중요한 겁니다.) 


동기가 반영된 제품이 나왔습니다. 이제 마케팅을 해야죠. 먼저 브랜드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겸 온라인 판매채널을 만듭니다. 카피는 고민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미 다 제품에 있습니다. 그대로 가져다 쓰면 됩니다. 광고 소재도 이미 다 나왔습니다. '더 이상 비싼 면도기 쓰지 마세요.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면도기를 매월 정기적으로 배송해줍니다.' 이 이상의 겉멋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조금씩 변형해보면서 효율을 개선해나가면 됩니다. 실행이 쉬워졌습니다.


와이즐리 웹사이트 첫 화면


제품을 만든 이유가 소비자의 합리적이고 현명한(WISE) 소비를 위함이라는데, 싫어할 소비자가 있을까요? 오히려 반가운 이야기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느껴집니다. 모두가 와이즐리의 품질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브랜드의 올바른 생각은 친한 친구들에게, 면도를 이제 막 시작한 동생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게 사람 심리입니다.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마케팅 비용은 떨어집니다. 


사업이 확장되어도 브랜드 메시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불합리한 화장품 시장, 불합리한 샴푸 시장을 바꾸겠다.' 그 동기를 위해 제품에 투자한 노력, 그 동기가 사람들에게 주는 감정은 또 한 번 마케팅 소스가 됩니다. 영역은 바뀌었지만 동기는 유지된 상태로 반복됩니다. 창업에서 가장 어려운 파트는 '동기를 제품에 올바르게 담는' 파트를 입니다. 타협 없이 고객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동기를 담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이걸 다 해낸 제품을 소문내는 건 지금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죠. 


오픈워크 웹사이트 첫 화면
헤드웍스 웹사이트 첫 화면

수많은 소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B2C 브랜드는 이렇게 명확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처음에는 시장을 보고 시작했더라도, 성장하면서 그 동기를 찾아 내부 팀원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하는 브랜드는 소비자들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매번 지어내야 합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했다, 이게 돈이 될 것 같아서 했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서 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브랜드를 만들고 계신가요? 어떤 브랜드인가요? 왜 그 제품을 만들고 계신가요? 그 제품은 소비자에게 정말 필요한 제품인가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브랜드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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