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이름을 분리해 보세요!
최근 노자의 ‘도덕경’을 기반으로 마케팅을 해석한 책을 읽다가 재밌는 생각법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1주일 간 이 생각법을 일상에 적용해 봤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한 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대상과 이름을 분리해 보는 겁니다.
: '아파트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내 앞에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피곤이라는 이름의 특정 상태가 나에게 찾아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맥주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내가 지금 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그 대상과 떼어봅니다. 사실 우리가 말을 배울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여러 '이름'들은 옛날 사람들끼리 했던 하나의 약속일뿐입니다. 앞으로 이걸 '맥주'라고 부르자. 이런 상태를 '피곤'이라고 하자. 이건 이제부터 '아파트'야. 이렇게 약속한 거죠. 이 약속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 사회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이름'이 된 것이고요.
모든 사람들이 쓰는 약속된 언어를 쓰면 우리의 생각도 딱 거기에만 머물게 됩니다. 아파트가 아파트지 뭐. 맥주가 맥주지 뭐야. 이렇게 사고가 멈추면 그게 고정관념이 됩니다. 하지만 이름을 버리면 그 대상 자체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 높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밤에는 더 반짝이는 거대한 물체구나. 마치 큰 조명 같네. 도시를 비추는 큰 조명. 큰 도시가 방이라면 아파트를 방 안의 조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밤에 알아서 켜지는 조명. 매일매일 밝기가 다른 조명. 사람들이 불을 많이 켜면 더 밝아지고, 적게 켜면 덜 밝은 조명. 이런 소재로 소설을 써도 재밌겠다.
: 머리가 멍해지고, 어깨는 무거워서 축 쳐지고, 눈은 뻑뻑해지는 상태. 근데 이상한 건, 이런 상황에서 운동을 하면 더 피곤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사실 '피곤함'은 몸이 힘들다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를 너무 오랜 시간 반복해서 이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뇌가 주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 무작정 쉬는 게 좋은 해결책이 아니겠네.
: 처음 마실 땐 톡 쏘면서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마시다 보면 텐션이 오르다가, 마지막에는 나른해지게 만드는 어른들의 보리 음료. 어쩌면 ‘피곤함’이라고 이름 붙여진 상태가 나를 찾아올 때 필요한 최적의 음료가 아닐까? 가장 빠르게 새로운 자극(톡 쏘는 짜릿함)을 주고, 축 쳐진 텐션을 올려주다가, 휴식을 취하도록 잠도 재워주니까. 피로엔 박카스가 아니라 카스네.
이런 생각들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전과 다르고 새롭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름을 떼어보면 그 대상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고, 대다수가 따르는 생각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걸 ‘나’라는 존재에 적용해 보면 ‘나’에 대해 좀 더 깊이 파악하는 계기가 됩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 ‘박상훈’이 아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감정을 다스리고 싶을 때도 사용해 볼 수 있겠죠.
‘화’라는 이름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네… 도대체 이 ‘화’라고 이름 붙여진 감정은 정확히 뭘까?
처음엔 약간 도 닦는 사람 느낌이 나는 이상한 생각법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한 번 해보시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주변의 물건, 여러분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도 한 번 적용해보세요.
‘ㅇㅇ’이라고 이름 붙여진 물건이 있네. ㅇㅇ이 ㅇㅇ이 아니면 뭐지?
‘ㅇㅇㅇ’라는 이름의 업무가 주어졌네. ㅇㅇㅇ은 왜 하는 거지? ㅇㅇㅇ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몇 번만 연습해 보면, 나도 몰랐던 내 창의성에 감탄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