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업을 위한 자가 진단 가이드
매출이 정체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어느 기업에게나 올 수 있는 시기죠. 이때 많은 대표님들이 이런 순서로 돌파구를 찾습니다.
예상만큼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 → 다른 브랜드들은 어떤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 찾아본다 → 그중 우리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추린다 → 직접 실행하거나 내부 마케터 or 대행사에게 요청한다
얼핏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에는 중요한 한 단계가 빠져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을 건너뛰었다고도 볼 수 있죠. 매출이 정체된 원인(=문제)을 정확히 규정하는 단계. 이 단계를 건너뛰고 실행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매출 정체를 극복할 날카로운 해결책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옵니다. 어떤 마케팅 전략의 근거가 '다른 브랜드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일 때 그 전략은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브랜드가 아니라 그 브랜드의 고객과 핵심 경쟁력에서 나온 전략이니까요. 애초에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멋진 스타일을 내려면 그 옷이 '우연히' 나에게도 딱 맞기를 바라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 딱 맞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운에 기대어 일을 실행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우리 브랜드를 정확히 진단했을 때 우리 브랜드만의 날카로운 전략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이 우리 브랜드를 진단할 시기라고 느껴진다면 팀원들과 모여 아래 3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어보세요. 다른 브랜드를 벤치마킹한 마케팅 전략보다 매출 성장에 훨씬 더 크게 기여할 아이디어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경쟁사 분석은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시장과 고객이 멈춰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짧게는 1~2개월 만에도 제품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제품을 출시할 때 정의했던 핵심 경쟁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하기 전에 이 핵심 경쟁력부터 다시 정의해야 합니다.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요.
일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호소다 다카히로는 책 [컨셉 수업]에서 경쟁사를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세 가지에 간단히 제 설명을 추가해 봤습니다.
1) 같은 카테고리 내의 경쟁자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경쟁사 분석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다른 브랜드를 찾아 그들의 강점, 약점을 분석합니다. 책상을 취급하는 브랜드라면 다른 책상이나 가구 브랜드를, 영상 편집 앱이라면 다른 영상 편집 앱들을 조사해 봅니다.
2) 같은 과제를 해결하는 경쟁자
고객은 카테고리를 미리 정해놓고 소비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소비하죠. 우리 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대안은 다른 카테고리에도 존재합니다. 책상을 구매해 얻으려는 '높은 생산성'이라는 결과는 집 근처 공유 오피스나 스터디 카페를 결제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상 편집 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더 빠른 편집'이라는 결과는 능력 있는 프리랜서를 고용해서 얻을 수도 있죠.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들을 살펴보면 좀 더 고객의 관점에서 우리 브랜드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많은 대안들 중 우리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제품이나 마케팅 메시지에 심을 수도 있고요.
3) 같은 시간을 점유하는 경쟁자
고객에게 시간은 돈만큼 중요한 자산입니다.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면 같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는 대안들도 함께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경쟁사는 다른 전자책 구독 서비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출퇴근 시간에 전자책을 본다면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튜브, 각종 OTT, 인스타그램 등도 전부 경쟁사가 될 수 있죠. 여기까지 시야가 넓어지면 브랜드의 목표는 '1등 전자책 서비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고객들이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게 만드는 것'까지가 목표에 포함됩니다.
지금까지 1)의 분석에서만 멈춰있었다면 2), 3)의 관점에서도 분석해 보세요. 이 여러 대안들 사이에서 우리 브랜드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고객들은 마케터가 의도하는 순서대로(인지하고, 고려하고... 깔때기를 단계별로 충실히 거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친구의 추천 한 마디에 링크를 타고 들어가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르고, 광고 의도가 전혀 없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보다가 갑자기 뭔가에 꽂혀 카드를 긁기도 하죠.
이제 고객의 구매 경로를 통제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의 마케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은 채널에서 고객을 만나 우리 브랜드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겁니다. 우리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분야에서 돈을 써야 되는 그 순간에 우리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게요.
채널의 수나 노출량은 숫자로 나오기 때문에 쉽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럼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지'는 어떻게 점검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영향을 주는 데이터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결국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로 이런 기준들을 가지고 브랜드의 광고, 콘텐츠 속 메시지의 임팩트를 점검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브랜드에게서는 쉽게 듣지 못한' 메시지일까?
똑같은 메시지를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고 고객에게 전하면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반응, 표정을 보일까?
우리의 광고 혹은 콘텐츠를 한 번 본 고객이 3일 후에도 내용의 일부를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광고 혹은 콘텐츠를 오래 봐온 고객은 우리 브랜드가 가진 경쟁력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을까?
만약 여기까지 점검을 마쳤는데도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면, 문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 경쟁력이 고객에게 잘 전달되고 있어도 시장에 한계가 찾아오면 매출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대기업들의 경쟁 시장인 '스마트폰' 시장을 예로 들어보죠. 1,2위를 다투는 애플과 삼성의 매출은 무한히 늘어날까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겹치면 엄청난 힘을 가진 이 두 브랜드도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한 대씩 가지고 있다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교체 주기가 늘어나고 있다
샤오미 같은 저가 브랜드로 일부 고객이 떠나간다
구글 같은 타 분야의 강자가 시장에 들어와 또 일부 고객을 빼앗아 간다
안에서 통제하기 힘든 이런 외부 요인들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큰 시장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애플과 삼성은 또 다른 종류의 가치를 만들어내면서 매출을 계속 끌어올립니다.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쓸 수 있는 워치나 이어폰, 스마트폰이 파손되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케어 서비스 등을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합니다.
작은 브랜드가 노리고 있는 시장에도 한계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땐 마케팅 예산을 늘리는 게 아니라 다른 가치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기존 제품을 한 차례 개선해 새로운 버전으로 출시할 수도 있고, 기존 제품과 함께 쓰면 좋은 구성품을 만들 수도 있고, 기존 제품으로 이미 만족시켜 본 고객의 취향을 저격하는 신제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핵심 기술이 있다면 그 기술을 다른 분야에 접목해 아예 새로운 시장을 공략해 볼 수도 있죠.
만약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제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마케터와 함께 해보세요. 제품 자체에 마케팅 요소를 심고, 이후 진행될 마케팅의 큰 그림을 함께 계획한다면 성공 확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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