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이 요망한 것!
시험은 너희 자신이 아니다
#1. 시험, 이 요망한 것!
전생에 무슨 대죄를 지었길래 대한민국에서 근 30년을 시험과 동고동락하고 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답을 찾아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10여 년이요, 답을 못 찾는 너희들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을 본 것이 대략 20년이다. 중간, 중간 인륜지대사를 치르면서 잠시 쉬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 치열한 전쟁터로 돌아와 있었다.
시험, 시험, 시험. 끝없이 이어지는 시험과 평가 속에서 너희들은 늘 물었었지.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빌어먹을 시험은 누가 만든 거냐고. 실성한 듯 웃으며 묻기도 했고 세상 짐을 다 짊어진 채 신음하듯 질문을 내뱉기도 했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즐겁지 않으냐고 우스개 소리로 넘어가 본 적도 있고 시험을 안 보면 공부를 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고 줄 세우기와 계급 형성은 사피엔스의 청동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니 체념하고 받아들이라고도 해봤다. 안다. 그 어떤 것들도 너희들에게 시원한 대답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한없이 착한 너희들은 희미하게 웃으며 실없는 선생님의 얄팍한 위로를 받아주었지.
시험은 너희를 기쁘게도 절망하게도 하는 요물이다. 다만, 시험을 잘 보고 의기양양 개선장군처럼 돌아온 너희도, 패잔병이 되어 몸뚱이 하나를 겨우 질질 끌며 기가 팍 죽은 채 돌아온 너희도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이 요망한 것이 또 너희들의 영혼에 치명상을 입혔구나! 참담하고 또 참담하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라.
시험은 너희 자신이 아닐뿐더러 너희의 아주 작은 부분을 서술해 주는 한 문장일 뿐이다. 인생 전체를 따지고 보자면 100점 만점에 5점쯤 하는 한 문제 정도랄까. 그러면 똑똑한 너희들은 그 5점 때문에 대학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할 테지. 그 말에 크게 반박할 수 없는 답이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 부끄럽구나. 하지만 반드시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길을 밝힐 빛은 너희 자신이 갖고 있다는 것을. 온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렴. 주머니도 뒤져보고 목덜미도 한번 쓸어보렴. 혹시 몰라, 루돌프처럼 콧잔등이 빛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