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누구냐?
아무리 생각해도 목표치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고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음.. 그렇다면 사실 상황이 몹시 심각한 지경이다.
호흡기만 단 채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너는 누구냐?
세상에 아무것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건 이미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에 대해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상처를 준 대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부터 친구, 심지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화가 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지? 어이구, 굶어 죽는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직업은 안 알아준다. 돈 못 번다. 과학자가 될 거면 스티브 잡스처럼 핸드폰을 만들고 화가가 될 거면 비싼 그림을 팔아라.
이런 과정이 많이도 필요 없다. 서너 번만 반복되면 곧 자가 검열 장치가 돌아간다. 아, 그건 안돼. 아, 이건 이래서 돈 못 번댔어. 아, 저건 못 할 거야. 그냥 못 할 것 같아. 에라이, 아무것도 하지 말자.
밀림에서 잡아온 코끼리를 쇠사슬로 몇 시간만 묶어놓으면 잠시 후에 힘없는 말뚝에 얇은 밧줄로만 묶어놔도 도망치지 않는다고 한다. 너희는 벌써 두 번째 코끼리가 되었니?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이제 눈을 뜨고 일어나 앉고 단단한 다리로 일어나 세상을 살아가야지!
공부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란다.
좀 좋은 아이템이긴 하지. 공부를 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분명히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하지만 언제까지 거기에만 매달려 있을 순 없다. 다른 아이템을 찾으려면 결국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제일 편하고 쉽다고 하는 것이다.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말뚝을 뽑아라!
그리고 야생의 정글로 뛰어들어 넘어지고 자빠지고 피 흘리고 부서질 준비가 되었다면! 그만큼의 삶의 근육과 오기가 있다면 그 여정은 언제나 응원이다! 하지만 아직 근육은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직 기어 다니는 수준의 자기 인식이라면 저런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객기고 반항이다.
겨우 기어 다니는 아이를 숲 한가운데 버려둘 부모는 세상천지에 없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은 범죄이지 일반적인 부모는 아니니 토 달지 말자) 앉고 서고 걷기까지의 과정이 일종의 공부인데.. 그래, 그것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 틀 안에 안주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인데 (소위 말하는 엄친아, 엄친딸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절머리 나게 싫다면 너희는 너희 자신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
정말 말뚝을 뽑고 뛰쳐나갈 준비가 되었니?
모두가 아니라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미지의 세계로 나가 뒹굴 마음의 준비가 되었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