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배우는 그들의 공통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승부사 9인에게서 추출한 승자의 DNA: 어느 시대나 "이것"을 가진 자들이 승리를 쟁취했다.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냉정한 세계에 압도되어 울타리를 쌓고 사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울타리를 걷어차고 세상 밖으로 나가 죽기 살기로 맞서는 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전자의 삶은 안전하고 실패할 염려가 없다. 질서를 유지하는 삶은 늘 합리적이다. 이 책에 등장한 9명의 삶은 정반대였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단언한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비합리적은 사람은 세상을 적응시킨다."
지은이 : 앤드루 로버츠
세계 최고의 전쟁사 학자,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현실에 기반을 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19세기 이후 세계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생생하게 집필해낸 지난 2000년 역사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올프슨 역사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수 주의의 싱크탱크인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쟁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한 사람이 어떻게 100명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논술 시험의 철학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이 책은, 나폴레옹, 처칠, 아이젠하워, 히틀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과 폭군의 삶을 통해 이름 없던 초라한 삶이 위대한 전이를 겪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뉴욕역사협회에서 진행한 특별 강연의 원고에 최신 연구 논문과 사료를 더해 지난 300년 전쟁사의 민낯을 생생히 복원해냈다. 과거의 지혜를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책에 등장하는 9명의 삶이 변화의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전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잔인하고 끔찍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을 하지 않은 시기는 찾기 힘들 정도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영어로 [History]로 His - Story 그의 이야기, 즉 승자에 의해 쓰인 역사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세계 제1,2차 대전에 대해 간단히라도 예전에 공부한 기억을 상기시킬 겸 위키백과를 찾아보았다.
세계 제1,2차 대전 - 출처: 위키백과
세계 제1,2차 대전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유대인 학살"과 "아돌프 히틀러"이다. 결과적으로 이 길고 길었던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났고 아돌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군이 승리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실제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어떠한 희생과 노력을 했는지 고스란히 책을 통해 전해졌다.
그리고 이 책은 흥미롭게도 두 진영의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연합군의 지도자들과 상대 진영이었던 독일의 지도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소개된다.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지도자였다.
난 이 책이 성공한 지도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들만이 지닌 성공의 DNA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고든 것이 좋았다. 나의 단편적인 지식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탄생했다.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는 고독한 리더였으며 그들은 언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전쟁은 모두에게 불행하고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에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도 상처만 가득했지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워야 했고, 승리해야 했다. 그러한 전쟁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승리를 얻어내고자 했던 이 책 속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영웅이다. (물론 히틀러와 스탈린은 제외이다. 이들은 너무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전쟁 속에서 이 지도자들이 선택한 건 승리하는 것이었다.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승리하라!
나폴레옹 VS 호레이쇼 넬슨
이 책의 제1장과 2장에 등장하는 인물인 프랑스 공화국 제1 통령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영국 왕립 해군 제독이었던 호레이쇼 넬슨의 공통점은 그들이 과대망상증과 정신분열증을 가진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키가 작고 허약했고 왜소했다. 이런 그들이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나폴레옹은 20대에 장군이 된 운이 좋고 기억력이 좋은 지도자였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영감과 자극을 불어넣는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첫 번째 방법은 그들이 이념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생각에 고취되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방법은 일을 잘했을 때 메달, 연금, 진급, 토지, 작위 등 각종 포상을 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군사들의 동기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포상을 선택했고 이는 이는 성공적이었다.
나폴레옹은 머리가 비상했고 그의 두뇌의 역량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워털루 전투에서 허무하고 비극적으로 패배한 것은 그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방식과는 정반대로 전개된 전투였기 때문이었고 이는 명백히 그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가 오늘날까지도 "정치, 군사, 사회, 예술, 경제 분야 등을 가리지 않고 언급되는 이유는 그가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목표를 달성해 성공하는 인간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줬기 때문이다."
호레이쇼 넬슨 또한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과대망상증 증상을 보인 인물이었으며, 두려움 따위는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 한 인물이다. 그들의 과대망상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잡독가였으며 아버지의 대형 서재에서, 그리고 아홉 살 때부터 다닌 3곳의 군사학교에서 위대한 군인들의 전기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율리우스 카이사로나 알렉산더 대왕의 직계 자손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호레이쇼 넬슨은 나폴레옹보다 더 심한 과대망상증을 가졌던 인물이다. 자주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했으며, 넬슨을 묘사하는 수식어는 인간관계에 서투른, 조현병에 찌든 심통 사나운, 자기 연민에 빠진, 쉽게 실망하는, 천박한, 억울해하는 등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그는 선상에서 프랑스 저격병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까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모험적인 삶을 살았으며 아돌프 히틀러의 침략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구해 영국이 100년 이상 해상을 장악하게 한 인물이다.
나폴레옹이 마드리드, 빈, 밀라노 등 유럽의 거의 모든 수도에서 승리의 행진을 펼쳤지만 런던에서는 행진하지 못했는데 이는 바로 호레이쇼 넬슨이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지지 않도록 했으며 그로 인해 나폴레옹이 생전 행진하지 못한 땅이 런던이 되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교훈은 간단하다.
"주도권을 잡고 적이 그 주도권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필요할 경우 규칙을 어기고 명령에 불복종하라. 병사들이 전투를 제2의 전성처럼 여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훈련하다. 푸른 이념의 불꽃으로 적을 혐오하라.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금을 받아내고 그 돈으로 가장 좋은 무기를 구입하라. 부하들에게 신뢰를 얻어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라. 그리고 난폭하게 적을 밀어붙여 상대가 늘 수비 상태에 머물도록 강제하라."
영국인이 사랑한 울보 수상 처칠
"사실상 20세기는 히틀러와 처칠, 또는 처칠과 히틀러 간 대결의 역사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제3장에 등장하는 역사상 가장 늦은 나이인 예순다섯에 수상이 된 처칠은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나폴레옹을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대륙에서 싸운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어릴 때부터 아무 근거 없는 망상에 가까운 자기 확신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친구인 에반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의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밀려오는 거대한 변화를 느낄 수 있어. 대격변, 끔찍한 투쟁,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전쟁의 모습이 보여. 이제 곧 런던은 엄청난 위험에 처할 거야. 런던이 공격을 받아 무너질 때는 나는 런던을 수호하는 사령관이 되어 있을 거야. 나에게는 미래가 보여. (중략) 다시 말하자면, 런던은 위험에 처할 것이고 나는 높은 직위에 올라 수도와 제국을 구하는 임무를 맡게 될 거야."
처칠이 소속된 영국 정당의 정치인들이 나치와 히틀러의 위험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반면 처칠은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예고했을 때부터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로 기록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처칠은 히틀러와 반대로 강경한 친 유대주의자였다.
처칠은 공개석상에서도 자주 눈물을 보일 만큼 허술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그의 눈물을 오히려 영국인들이 처칠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었다. 오히려 영국인들은 처칠의 우는 모습을 보며 그가 감정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솔직한 리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다방면에서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철인 통치자는 아니었지만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유일하게 히틀러가 밟지 못한 땅으로 남게 한 건 처질의 위대한 업적이 틀림없다.
침착한 리더십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
"겸손은 언제나 자신의 추종자들이 흘린 피와 친구들의 희상 덕분에 찬사를 받는 모든 사람의 몫이어야 합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지도자는 제6장에 등장하는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 하워이다." 난 이 인물이 아니었다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며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 등장하는 다른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침착했고, 차분했다. 남들이 나무를 볼 때 그는 숲을 봤다. 연합군은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고, 조율하는 역할에 탁월했던 그는 결국 지도자들의 지도자였다. 그는 전역 후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상당히 성공적으로 대통령 8년의 임기를 마쳤다고 한다.
"아이젠 하워는 고통스럽고 참담한 최악의 전쟁을 외롭게 지나면서도 인간이 지녀야 할 필수 감각을 잃지 않았던 유일한 군이었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수백만 군의 지휘관 자리에 올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는 전쟁을 하루빨리 종결시켜 무의미한 학살과 힘의 과잉의 중단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고,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다."
1944년 6월 5일 아침, 400만이 넘는 연합국 병력이 투입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최종 지휘관이자 책임자였던 아이젠 하워는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위해 한 승리가가 될 수도 있었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작전의 책임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매우 침착해 보였지만 그 당시 하루에 답배 4갑을 피웠고 상륙 작전이 끝난 뒤에는 혈압이 110에서 2기 고혈압 수준이 176으로 치솟을 정도로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 히틀러
독일 제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총통이며, 쉰여덟의 나이에 연인과 함께 지하 벙커에서 동반 자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실제로는 과격한 음모론을 신봉하는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람이었고, 주변을 지루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산문가이자, 알고 보면 하찮은 군사 전략가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지금껏 세계의 그 어떤 정치인도 누리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동경을 누릴 수 있었을까?
"독일의 언론 매체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 무려 12년간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히틀러의 목소리만 내보냈다. 독일인들에게 히틀러는 대체할 수 없는 신앙이었다."
"1981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왜 전쟁에서 졌는지, 왜 이토록 끔찍한 식량난을 겪어야 하는지, 왜 자신들의 위대함을 세계에 과시할 수 없는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들은 민족 간 우열이 존재한다는 "인종론"을 믿었으며, 서부 전 선에서 세계 최강의 독일군이 패배한 이유는 독일 안에 기생하는 유대인, 공산주의자, 패배주의자, 귀족, 열등 인간 때문이라는 나치당의 배후증상설에 완전히 경도되어 있었다."
독일 육군 통신병으로 복무하다 패전 후 뮌헨으로 돌아온 스물네 살의 히틀러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독일인들을 발견했다. 후에 첩자 신분으로 독일 노동자당에 잠입했던 히틀러는 그들의 이념에 감화되어 당원이 되고 그곳에서 그의 세력을 키우고 나치당의 지도자로 성장해 동료들과 함께 기관총을 들고 뮌헨의 한 맥주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 폭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이 폭동으로 영웅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독일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일은 일어났고 수많은 이들이 그의 망상에 희생양이 되어 죽어갔다.
다수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소수를 박해해야 한다는 히틀러의 위험천만한 발상은 발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실천하는 행동가였다. 독일 인구 중 1% 미만이었던 유대인, 공산당 조직원, 사회민주당 정치인들은 히틀러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유대인을 병충해라고 여겼고 "이 병충해를 없앰으로써 우리는 인류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걸세"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똑똑한 국민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방해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그 똑똑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 또한 유대인들이었다. 히틀러에게 유대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야만 하는 "병충해" 였던 것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아내인 에바 브라운과 지하 벙커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동반 자살한다.
독일인 700만 명, 연합군 3400만 명, 유대인 600만 명 등 다 합쳐 4700만 명의 사람이 단 1명의 비뚤어진 생각 때문에 죽어갔다.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
이 책에서 소개된 유일한 여성 지도자인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란 수식어답게 결코 쉽게 승복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무력 도발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도전이었다. 1970년 4월에 발발한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무력 갈등은 다른 전쟁에 비하면 소규모 국지전에 불과했지만 포클랜드 전쟁에서 양군 합체 1000여 명의 전사자들의 영혼들이 남긴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전사한 250명의 영국군 전사자의 부모에게 250통의 장문의 편지를 쓴 건 그녀가 여성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초 지지율 20퍼센트도 얻지 못했던 마거릿 대처는 이 전쟁의 승리로 98퍼센트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으며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굳건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서평을 마무리하며,
위대한 지도자에게서도 형편없는 지도자에게서도 배울 점은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훌륭한 지도자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걷게 될 것이고 형편없는 지도자로부터 잘못된 영감을 받은 이들 또한 그 잘못된 길을 다시 답습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형편없는 지도자가 아닌 올바른 길을 걸어온 위대한 지도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처럼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고 생명을 병충해 취급하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아닌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마거릿 대처와 같은 지도자에게서 우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분명 승자의 DNA는 존재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불굴의 의지로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포기를 몰랐다. 전쟁에서 패하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포기를 몰랐다.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우리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쓰인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