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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여행자 Jan 20. 2022

왠지 끌리는 명화 한 점

이유 없이 끌리는 명화 72선 - 책 속의 명화 산책


"왠지 끌리는 명화 한 점"



영국 유학 시절 시간이 나면 The National gallery, London에 자주 방문해 미술 작품을 구경했다. 난 미술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유일하게 질투가 나는 직업군이 바로 화가이다. 난 어릴 때부터 유명한 화가들의 멋진 작품을 보고 나면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그림 실력은 형편없었고 끈기를 가지고 그림 한 점을 완성해 본 건 몇 년 전 그림 원 데이 클래스에서 3일 동안 완성한 꽃 그림이 전부다.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분명 신이 부여해 주신 특별한 능력임에 분명하다. 노력으로 잘 그리는 건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행복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들이라니!





책의 표지의 그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색감이 정말 너무 아름답다~!! 그림이지만 사진보다 더 실감이 난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상반되는 슬픈 눈망울을 가지고 있다. 우수에 찬 그녀의 큰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다. 그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이 책의 작가인 이윤서 님은 울산 MBC FM 97.5 <이관열 이남미의 확깨는 라디오> 매주 금요일 3부 “주말의 명화” 코너에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이 책은 그 당시 라디오에서 소개했던 명화들 중 의미 있는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서 출간한 책이라고 한다. 그 당시 명화를 소개할 때 화가 개인의 삶과 마음에 집중해서 그때그때 끌리는 그림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을 <왠지 끌리는 명화 한 점>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명화를 소개할 때 독자분들이 그림을 만날 때 개인의 삶에 몰입되어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수많은 그림을 보면서 각각의 그림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림이 화려해도 화가가 그려 넣은 몸짓과 눈빛에서 감춰진 슬픔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삶이 불행하지만 행복하다고 거짓말을 하듯 그림도 불행하지만 얼마든지 행복한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 감상을 오래 하다 보면 그림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때면 그림 앞에서 소리 없이 울기도 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1755~1842년, 프랑스) [자화상]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1755~1842년, 프랑스) [자화상]



책을 펼치고 제일 처음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그림이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는 그림 속의 여인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생기발랄한 소녀에 가까운 이미지였고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 속의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림 속 여인을 응시했고 어느 시점에서 그녀가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이 초상화에서 나는 슬픔을 발견했을까? 검은색 의상과 어두운 배경색이 전반적인 어두운 분위기와 대치되는 그녀의 생기 넘치는 표정과 맑은 눈망울 살짝 벌린 입은 오히려 슬픔을 극대화하는 착시 효과같이 느껴졌다.



작가가 이 그림을 보았을 때는 그 어떤 사소한 것도 시작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있던 시기에 브룅의 그림들과 그녀의 삶에 대해서 들여다봤고 브룅의 자화상 속 눈빛을 보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 눈빛은 작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고 한다.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으니 눈 크게 뜨고 숨 한 번 들이쉬고 가슴을 펼쳐 봐!” 작가는 이 브룅의 자화상을 보고 그녀의 눈빛에서 야망을 발견했고 다시 도전을 꿈꿀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보는 이 그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어떤 각도로 그림을 보았을 때는 그녀의 슬픔이 느껴졌고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는 연약해 보이는 소녀의 강인한 정신력과 야망이 보이기도 했다.



삶이 항상 우리의 바람대로 꽃 길만 펼쳐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은 그 누구에게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화가의 개인적인 삶은 너무 가혹했다. 친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머니의 재혼, 새아빠와의 가정불화, 결혼한 남편의 도박벽과 여성편력 이러한 것들은 그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재능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아마 추어 화가, 거대한 규모의 화상, 부유한 재산가였던 남편을 만나면서 그녀의 재능을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암울하기까지 했지만 그 결혼으로 인해 그녀는 상류층에게 인기 있는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인 게 분명하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엘리자베스 루이 비제 르 브룅 (1755~1842년,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아이들]



브룅은 18세기의 귀한 여류 화가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공식적인 궁정화가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브룅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무려 30점 이상을 그렸을 정도로 총애를 받는 화가였다. 프랑스혁명 이후 왕과 왕비는 사형에 처해졌고 브룅은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녀의 망명생활은 무려 12년간 이어졌다고 한다. 망명 생활 중에도 그녀의 그림은 여러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녀는 망명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면 살았다고 전해진다.


존 에버렛 말레이 (1829~1896년, 영국) [오필리아]




이 그림은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많은 상을 받았고 훗날 왕립 아카데미 원장이 된 인물이다.



그가 그린 <오필리아>는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다. 나는 런던 유학 생활 중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자주 작품을 보러 갔었는데 이 그림을 본 적은 없다. 아마 실제로 봤다면 오랫동안 이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림을 감상했을 것이다.


존 에버렛 말레이 (1829~1896년, 영국) [오필리아]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의 연인이었다.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에서 오필리아는 반쯤 정신이 나간 여인으로 묘사된다. 그도 그럴 것이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고 있는 숙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친 척을 하고 그 와중에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오필리아의 아름다운 젊음이 그녀의 생명의 숨이 죽음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드리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화가는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이미 죽어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녀의 희망 없는 삶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밀레이 화가는 강가에서 5 개월 이상 머물며 하루 11시간씩 정성을 들여 배경을 완성했고 화가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시덜은 실제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욕조에 누워 그림을 완성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가 실제 그의 아내 시덜은 작품과 같은 비극적인 삶으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 동시에 다 잃어버렸던 오필리아에 자신의 아버지를 실수이긴 하지만 죽인 사람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 햄릿이었으니 그녀의 슬픔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햄릿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말 그랬을까? 복수를 꿈꾸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비극뿐 만이 아니라 희극도 많이 썼다. 난 개인적으로 희극을 더 좋아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비극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하는 메시지는 사실 단순하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은 사실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유령이 나타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숙부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꿈일 뿐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복수를 꿈꾸는 순간 인간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게 햄릿 혼자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비극이다.


장 프랑스아 밀레(1814~1875년, 프랑스) [씨 뿌리는 사람]


장 프랑스아 밀레(1814~1875년, 프랑스) [씨 뿌리는 사람]




밀레의 그림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엽서, 광고, 달력 등에서 수없이 보아왔었다. 밀레의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그의 그림은 실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민들이 농사를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 <이삭 줍는 여인들>은 광고의 소재로도 자주 쓰인 작품이다.



이 그림을 자세하게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3명의 여인이 이삭을 줍고 있다. 두 명은 허리를 90도 이상 굽히고 손이 바닥에 닿았다. 나머지 한 명은 살짝 앞으로 몸을 기울인 정도 있다. 자세히 보면 그녀들이 쓴 모자 색도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도 다 다르다. 그리고 오로지 이삭 줍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녀들 뒤로 저 멀리 그녀들이 주운 이삭을 쌓아 올리는 이들이 보인다. 짐을 쌓아 올린 수레도 보인다. 농부의 수고와 고단함 이 느껴지는 동시에 자연의 주는 배경에 차분한 마음이 든다.



장 프랑스아 밀레(1814~1875년, 프랑스) [이삭 줍는 여인들]


어릴 때 지독히도 가난했던 밀레는 아버지의 희생으로 21세 정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보자르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26세에 살롱에 입선하며 초상화 가로 활동한다 여전히 가난했던 밀레는 결혼을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난으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했던 첫 번째 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밀레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닌 돈이 되는 남들이 주문하는 여자의 나체를 그렸는데 어느 날 길에서 사람들이 밀레는 여자의 나체만을 그리는 화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재혼 후 성공적인 화가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농촌으로 가서 농부가 되어 살아간다 그림도 그때부터는 자연과 농사를 하는 사람들을 그리게 된다. 그 그림들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그림으로 남아있다. 결국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사랑받는 화가인 거 보면 그는 그 그림들을 그리면 꽤 행복했던 것 같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81~1919년, 프랑스) [물랭드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81~1919년, 프랑스) [물랭드라 갈레트의 무도회]




르누아르 작품은 영국 유학 생활 중 자주 방문했던 The National gallery, London에 많이 있다. 특별히 난 르누아르 작품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바라만 보고 있어서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느루와르 작품 [우산]



 작품은 느루아르 작품  [우산]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그림은 책에는 소개되어 지 않지만 내가 특별히 느루아르 작품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색 우산을 쓰고 있지만 앞에 있는 여인과 소녀 둘은 우산을 쓰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정면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검은색 옷을 입고 바구니를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여인과 아담한 키의  그란 볼을 가진 귀여운 소녀는 화가가 그림을 통해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실제 내가 봤던 그림은 색이  선명하고 시선을 잡아 끌만한 요소로 가득했다.   그림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토록  그림이 좋았는지는  설명할  없다. 아마도 특유의 르누아르 작가의 밝음이 좋았던  같다.  르누아르 작품 속에서는 슬픔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내가 봤던 그림에서는 그렇다.


이 화가는 어떤 화가였을까? 피레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슬픔이 없는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물랭 드라 갈레트의 무도회>도 그렇다.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나 고독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검은색과 대비를 이루는 흰색과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더 생생하게 보인다. 인물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미소를 띠고 있다. 행복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루누아르는 풍족한 집안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양복 재단사였던 아버지는 일찍이 르누아르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유독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실제로 르누아르가 지인들을 초대해 그들이 파티를 즐기게 했고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르누아르는 넉넉하지 못했어도 유년 시절에도 그랬듯 친구들과 교류하는 데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가난함에 대한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이것은 유년 시절 부모님이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운 덕분일 것이다." [왠지 끌리는 명화 한 점 중에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81~1919년, 프랑스) [뱃놀이 일행의 오찬]



그의 또 다른 그림인 [뱃놀이 일행의 오찬]은 그 당시 젊은 남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뭔가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는 건 실제 이 그림을 그린 르누아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르누아르는 40살이 넘어 결혼을 했는데 바로 사진의 왼쪽에서 강아지를 안고 눈을 감고 있는 여성이 훗날 르누아르의 부인이다. 그는 이 그림으로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했다고 하니 이 그림을 보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 차제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예술이 없었다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삭막하다. 그림을 통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마음은 위로받는다. 그림을 감상할 때 특별한 미사여구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이 느낀 그대로 묘사하면 된다. 같은 그림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그림의 해석에 있어서도 정답은 없다.



난 유럽을 좋아한다. 유럽에 여행도 하고 그곳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건 유럽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마음의 안정을 준다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 자유를 위해 투쟁해 온 이들이 쟁취해온 문화유산 같은 것이다. 실제 그들의 정치가 어떻든 문화가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난 유럽에 갈 때마다 그게 영국의 런던 이든 프랑스의 파리이든 이태리의 밀라노에서도 그곳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그들의 건축물 자체가 예술이고, 무료로 개방된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도 있지만) 미술관, 박물관 등은 삶은 좀 더 풍요롭게 해 준다.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나 스스로 아쉽다고 느끼는 건 유럽에서의 자유를 이곳에서는 시도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미술관, 박물관이 많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잘 가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예술을 좀 즐기며 살아가야겠다.



코로나로 인해 미술관에 직접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갈 수는 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예술을 멀리하면 삶은 너무 단조롭고 메말라진다. 난 이 책을 런던의 National gallery에 방문한 것처럼 읽었다. 이 책의 작가는 우리에게 화가 개인의 삶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해 준다. 화가가 그린 그림을 이해하는 데 어쩌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르누아르 작품이 특유의 밝음과 행복함을 가득 품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고, 밀레가 지독한 가난으로 원하지 않는 여자의 나체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농부가 되어 자연을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농부들을 그렸다는 것 등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고 화가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책 한 권은 돈이 아깝지 않다. 이 책 한 권에 작가의 오랜 수고와 지혜와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책으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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