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인근 계곡에 갔다 왔다. 시원한 계곡물을 생각하고 발을 담갔지만, 폭염은 계곡물도 피해 가기 어려웠는지 미지근한 온수에 발을 담근 느낌이었다. 우리 가족은 발만 담그고 올 계획이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대학생쯤 보이는 남학생들이 공을 던지면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물높이가 그들의 가슴 깊이까지 오는 것이 제법 깊어 보였다. 내 딸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튜브에 앉아 노를 저으며 유유자적하게 혼자 노는 모습이 혼자 신선놀음을 하는 것 같았다. 여벌 옷도 챙겨 왔는데 아빠랑 수영 좀 하고 오라고 했지만 고집 센 내 딸아이는 꿈쩍도 안 한다. 5분 정도 발만 담근 뒤 수박을 먹고 다시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계속 담그면 시원한 기운이 올라올 줄 알았으나 날이 정말 덥긴 더웠나 보다. 전혀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질 않았다. 계곡에 시원함을 기대기보다 우린 시원한 자리를 물색했다. 그늘지고 바람이 부는 명당을 발견했다. 명당에서 살랑 부는 바람을 만끽하고 5분이 지난 뒤 "삑"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시설 관리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물놀이 위험 지역입니다. 위로 이동해주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공무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동하려고 자리를 일어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서 정지 동작을 했던 사람들도 다들 움직일 채비를 하니 하나둘씩 움직인다. 그런데 나와 딸, 우리 동생은 일어섰는데 남편이 말한다.
남편 왈 "어딜 가?"
나왈:"이동하라잖아 여기 위험지역이라고!"
남편 왈"우리 발만 담그고 갈 거잖아! 물놀이 안 할 거잖아!"
나왈"아니 그래도 이동 하래잖아! 우리 빼고 다 갔잖아!"
남편 왈"사람들 참 착해. 죽는 줄도 모르고 저리로 이동하세요 하면 북한으로 다 갈 사람이구만!"
하는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더 앉아있겠다는 남편의 말에 순순히 응했지만 앉아있는 5분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무원 분이 재등장하셨다. "삑!" " 거기 있는 분들 거기 있으면 안 됩니다. 당장 이동하세요.!"
진즉 이동했으면 호통치는 소리는 안들을 수 있었을 텐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한 목청 하는데 나보다 목청이 좋은 남편이 계곡이 울리도록 아저씨께 말을 전한다.
"이제 나갈 거예요.!" 이렇게 말해놓고 자리를 안 뜨면 어쩌나 했는데 나처럼 딸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집에 가자고 해서 우리는 자리를 떴다.
계곡을 건너면서 "저 사람들 자기 죽는 곳인지도 모르고 가라고 하면 갈 사람들이네!" 하는 남편의 말이 맴돌았다. 그 말은 묘하게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세요!"라는 말과 오버랩되었다. 나도 만약 그 배를 탔으면, 100퍼센트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가라앉는지도 모른 체, 가만히 가만히 말이다.
내 남편은 삐딱선을 잘 탄다. 나는 벗어나는 행동을 싫어한다. 그런 행동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시키는 매뉴얼대로 잘하는 사람이라 예측 가능한 일을 좋아하고 안정감이 있다. 큰 일을 벌이지 않고 안정감 있게 살 수 있는 반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과 창의력이 약하다. 남편은 임기응변에 능하고 항상 의문을 가진다. 남편이 만약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으면 "뭔 소리예요? 밖으로 나가야지. 빨리 나가요."하고 자신도 살고 주변 사람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톡톡 튐이 불편할 때도 많다.
내 딸은 외모는 남편을 99퍼센트 닮았지만 성향은 안타깝게도 나와 많이 비슷하다. 임기응변도 능하고 규칙도 잘 지키는 나와 남편이 적절히 믹스된 인간으로 딸이 자라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르게 크길 바라는 마음은 크나 방학 2주 차, 내 딸은 매일 할 것이 없어 웹툰을 보고, 만화책을 읽고, 티브이를 보고 낮잠을 자고, 게임을 하고, 글을 적고 나는 딸을 거의 방치하고 있다.
미안 딸! 그런데 엄마도 엄마대로 할 일이 있구나 ㅠㅠ
세월호 기억공간이 광화문을 떠났다. 우리의 아픔은 깊이 새기고 기억할 수 있도록 기억의 공간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숨지 않았으면 한다. 지켜주지 못한 그들이 하늘에서 편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