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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Jul 11. 2021

이 밤의 알코올을 붙잡으며

취중 글쓰기

취중진담도 있지만 취중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내가 나인지 알기 때문에 완전히 취했다고는 볼 수 없다. 개가 될 정도로 (애견인인 나인데 이런 표현밖에 못 쓰나 세상의 개들에게 Sorry) 마시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과 몸은 알코올로 불타오르는 중이다. 오늘은 2주 전에 체크한 글쓰기 모임 1분기 오프라인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확진자가  다섯 명 내외지만 수도권 상황이 심각하기에 줌으로 1분기 마감 Party에 참여하기로 했다.  아이가 먹을 식빵을 산 뒤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렀다.  온라인으로 하는 파티지만 구색을 갖춰 술을 사고 싶었다.  각양각색의 맥주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맥주 종류를 잘 몰라 대체적으로 갈색 캔이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갈색 캔 500ml 맥주와 안주로 소라과자와 오징어를 사고 집에 들고 왔다. 요 며칠 남편이 집에 내려왔는데 나의 행동을 보고 나의 10세에게 "00아, 너네 엄마 왜 그래?  할 거 다 하고  살구만!"하고 놀렸다.  오랜만에 온 남의 편을 생각해서 오프 모임에 안 가는 이유도 절반은 있는데 나의 속을 모르니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 맞는 것 같다. 남편이 있었으면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조금 겸연쩍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내가 줌 접속을 할 때 골프 연습을 하러 나갔다.

줌으로 접속해서 글쓰기 모임 멤버들을 만났다. 1년 전에 유주택자가 된 글쓰기 모임 회장님의 아파트에 4명의 멤버들이 모였다. 나머지는 나처럼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회장님의 집을 랜선으로 소개해줬다. 식물을 좋아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그녀의 집은 인테리어도 싱그럽고 담백했다. 남이 차려 놓은 집에 막사는 무주택자(소형 도시에 비싸지 않은 손해가 막심한 아파트가 두 채가 있음에도 내가 사는 곳이 월세기 때문에 유주택자로 1도 느껴지질 않음)

인 내가 잠시 유주택자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프로 참여하는 멤버들을 위해서 스파게티와 샐러드가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비록 참여하지 못했지만 눈이 즐거운 순간이었다.  내 식탁은 키친 타월, 양파망, 식빵 , 오븐, 밥솥, 양치도구 등 잡동사니가 너저분하게 놓여있다. 너저분한 식탁  위에서 나는 맥주캔을 땄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맥주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 음료수였나? 옆에 있는 동생에게 한 모금을 건넸다. 동생도 음료수 같다고 했다. 성분을 보니 알코올 6%였다. 술알못 나는 6%가 높은 비율 인지도 모르고 술이 술술 들어가서 500ml의 맥주를 2/3를 다 마셨다. 불타오르는 얼굴과 팔을 보고 딸은 '술 주정뱅이 엄마'라고 걱정 반 호심 반 표정을 지었다.  딸 얼굴에 대고 단전까지 다 끌어서 술냄새를 후하고 내뿜었다. 술냄새를 맡은 딸은 괴성을 지르고 웃으면서 즐거워한다.

알딸딸 살짝 내가 아닌 기분, 오랜만에 느껴보니 좋다.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라 좋은 것인지 이 기분 때문에 애주가들이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내 몸으로 들어온 술이 즐거운 듯 춤을 추고 다니면서 내 몸을 붉게 했다.

오프라인으로 글쓰기 모임 멤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도 좋다. 이어폰을 끼고 멤버들과 대화하고 편한 장소에서 맥주 한 캔!

  알딸딸한 상황이 잦으면 이 행복이 줄어들 것 같다. 아껴놓았다가 더 행복해지고 싶을 때, 삶이 힘겨워 털어내고 싶을 때 가끔씩 맥주 한 캔을 따야겠다.

기분 좋은 내 주량을 이제야 알게 된 날, 뉴스로 접한 코로나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 상황을 보니 기개를 펼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의 일은 또 새로운 플랜을 짜야할 듯 싶다.

코로나 확산세가 꺾여서 알딸딸하게 기분 좋은 소식이 2주 후에 날아왔으면 좋겠다.

술기운에 글을 쓰려고 했는데, 취기가 증발해버렸다. 몸이 술기운이 붉게 타오를 때 썼으면 명문이 나왔으려나? 사그라드는 알코올 기운을 붙잡고 싶은 밤이다.

이 밤의 끝을 잡고(아 옛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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