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업무와 교원능력평가 업무를 올해 배정받았다. 방과 후 업무도 강사들 월급 관련 서류와 수업 일지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올해는 작년에 하지 않았던 일, 분기별로 신청자 명단을 받아달라고 행정실에서 요구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교원능력평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올해도 업무는 쓰여있지만 안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BUT 공문이 매우 자세하게 왔다. 교원평가위원회를 조직하고, 심의를 받고 계획서를 6월 16일까지 올리라고 말이다.
안 할 수도 있겠다고(이 업무는 부차적으로 써놓은 것일 뿐이야) 마음 편히 생각하다가 해야 되니 거대한 벽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작년에는 하지 않았고 재작년 것은 코로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복붙을 할 수는 없었다. 교묘하게 계획서를 창작을 해야 했다. 동료평가도 없어지고 다른 위원회로 심의를 할 수 있다고 코로나 상황에서 편하게 하라고 우리 이만큼이나 봐줬으니까 잘해봐라는 교육부의 본심이 공문에서 팍팍 느껴졌다. 계획서를 짜는 것보다 사실 제일 싫은 것이 위원회를 모집해서 회의를 주최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석에서는 낯짝도 두껍고 공개수업을 하면 쇼맨십도 있는 외향적인 성격인데, 아 회의를 주최해야 되다니. 너무 싫었다.
공문이 온 날부터 나는 브런치를 들리지 않았다. 그게 뭐라고 글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아 며칠 뒤면 회의를 해야 해. 아 이 업무 잘 모르는데 계획서는 맞게 한 거 맞겠지? 또 덜렁대서 실수한 것은 없겠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2주를 보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반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났다. 2주 동안 책도 드문드문 읽고, 초등교사이면서 시인, 동화 작가이기도 한 윤일호 선생님 연수는 열심히 참여하긴 했다. 그래도 계속 머릿속 한 켠에는 회의를 해야 하는데, 계획서 맞게 세운 거 맞겠지? 란 걱정이 맴돌았다. 회의는 6월 10일 날 무사히 끝났다. 선생님들께서 올해도 안 하지 않을까 하셨지만 교감 선생님이 웃으면서 뼈 같은 말을 하셨다.
"아마 할 거야. 이이는 일이 따라다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다. 업무는 전혀 사랑하지 않는데 가벼운 업무보다 무거운 업무가 나를 자꾸 따라다닌다. 가볍다고 받은 건 꼭 무언가 하나 얹혀 온다.
그래도 동료평가를 안 하고 평가위원회에서 학부모 위원을 위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아량의 깊이가 도랑 수준이라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가르치고만 싶은데 업무는 학교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교원능력 평가 업무가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 11월 평가 시에만 살짝 학부모님과 학생들에게 홍보한 뒤 평가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평가문항과 대상을 심의받고 계획서를 세운 뒤 평가를 하고 평가 결과를 정보공시 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 남았다.
우리 학교 화단에 꽃은 날이 쨍해도 비바람이 불어도 꿋꿋하게 잘 피어있는데 나는 업무 하나에 2주간 마음속에 갈지자만 그렸다.
학교 화단을 꽃을 볼 때마다 나는 고작 이거 하나에 흔들리는데 네가 나보다 낫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마음 잡아서 브런치 글을 읽었다.
작가님들도 평온한 날만 있지 않았을 텐데 부지런히 글을 쓰신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하다.
나가지 못함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갈 줄 알았으나 정말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회의록을 올리고 심의받은 계획서를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 한다.
할 일이 남았지만 2주 간의 나를 다시 꺼내어 보고 싶지 않다.
화단의 꽃처럼 꿋꿋하게,
강한 여름 햇빛에도 싱그러운 빛을 발하는 잎사귀처럼 지내고 싶다. 제발 그러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