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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May 24. 2021

머리가 새하얀 아이의 수필 선생님을 보며

딸은 나의 강요에 의해서 수필 부문에 응모를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매주 금요일마다 나의 강요에 의해 '문학의 날'이 시행되고 있는 중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독서마라톤에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올리고, 수필 코너에 글을 써야 한다. 시작은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냐고 내 딸은 작은 눈이 생각보다 커지도록 눈을 부라리지만 막상 모니터 앞에 앉으면 그래도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독수리 타법으로 곧잘 적어 나간다. 공짜로 받은 문제집이 있어서 평일은 '문제집의 날'로 정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약속은 하나도 안 지키고 있다. 둘 다 강제로 한 약속인데 '문학의 날' 약속은 꽤나 잘 지켜주는 10세가 대견하기도 하다. 나의 딸은 꾸준히 수필을 올리면서 댓글로 지도를 받았다. 그런데 5월 22일은 선착순 5명만 대면 수업을 해주신다고 공지가 떴다. 다른 것은 굼뜬 내가 이런 공지는 약삭빠르게 봐서 다행히 5명 안에 들었다. 딸아이는 대면 수업을 받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만년 초보인 나는 집에서 12분 거리도 긴장하며 모의 주행을 하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딸아이를 수필 방으로 보내고 나오는데 순간 멈칫했다. 딸아이를 그동안 글 코치를 해주신 심사위원 분이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아버지 셨기 때문이다.
멈칫 거리는 나 자신의 모습에 나 스스로 적잖이 놀랐다. 우리 동학년에도 내년에 정년을 앞둔 선생님이 계신다. 우리처럼 화려한 자료를 만들거나 검색해서 찾는 것은 서투시지만 학년 회의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시면 참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을 했던 나였다. 학부모님이 나이 많은 선생님을 싫어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동학년 선생님을 생각하며 엄마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노하우가 있고 아이들한테 더 좋을 껀데 엄마들 참 이상해라고 말을 했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 딸아이의 수필 선생님이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라는 겉모습만 보고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나이 드신 사람은 트렌디하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것들만 가르칠 것 같다는 편견을 나도 무의식 중에 가졌던 것이다.
40대의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여교사인 나는 1학년 학부모들이 담임으로서 가장 선호하는 조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젊어서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범하는 오류도 덜 할 것이고, 너무 나이가 많아서 옛 방식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아닌 그냥 딱 적당한 나이와 노하우를 가진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내 나이가 40대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학부모들로부터 나이 많은 사람이 우리 아이의 담임됐다는 소리를 듣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옆반은 다 젊은데 우리 애만 제일 나이 든 선생님이 되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학부모들의 반응이 돌아 돌아 내 귓가에 들어올 날이 있을 것이다.
  오늘 아이의 수필 선생님을 보고 멈칫거렸던 내 마음을 반성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쓰임이 퇴색해가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는 늙는 존재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자리를 나 스스로 좁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싼 마스크팩을 하고, 새치를 염색하고 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 듦 보다 쓰임이 적어지는 나이 듦이 더 서글플 것 같다. 윤여정 배우처럼 건강하게 그 나이까지 쓰임이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래로 위로 윤며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아이의 수필 선생님께 죄송하다. 앞으로 더 성실하게 적으라고 해야겠다. 작가 선생님 아이들의 글을 보고 퇴고를 해주시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일상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P.S.칭찬도 좀 많이 해주세요. 대면 수업 중에 자기 글이 제일 별로였는지 많이 언급되었다고 약간 심통을 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의견을 살짝 내줘도 감히 자기 글을 건드리냐고 고집이 센 아이라서 지도는 힘드시겠지만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문단 나누기는 아무리 해도 안되나 봐요. 어미를 닮아 글에 장난기도 많고 궁시렁체에 능합니다. 다음주 금요일에도 글을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잘 봐주세요. 선생님

사진출처: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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