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공복에 유산균을 먹는다. 이제 마지막 남은 유산균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산균 통에 붙은 글자들이 문득 읽고 싶어 졌다. 매일 한 알씩 꾸준히 섭취한 지 6개월 째이다. 그런데 이게 뭐지? 볼록렌즈를 낀 것처럼 "1일 1회, 2정 섭취"가 크게 보였다. 2정? 정말 레알 2정? 6개월 동안 한알씩 꼬박 섭취했는데?
@@날씬인데 기대치만큼 날씬해지지 않은 것도 2정 섭취인데 1정만 섭취해서 그런 것일까? 2정 섭취했으면 정말 숙변까지 쑥 빼서 한결 가벼워졌을까? 왜 하필 마지막 한통을 남겼을 때 알게 해 준 것일까? 아침부터 푹푹 한숨이 났다.
2정 먹어야 했던 유산균 사건은 잊고 있었던 1년 전 3월의 마스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작년 월초는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었다. 마스크를 내가 알던 가격보다 조금 더 주고 사야 했던 귀하신 마스크! 다른 사람은 마스크가 좀 커 보이는데 나는 좀 작네. 발달된 내 하관을 소화하는 마스크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그래도 입과 코는 가려지니 잘 끼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간만에 내려온 남편이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배꼽 잡고 웃었다. 정말 마눌님 오래간만에 보더니 이 인간이 실성을 했나 싶었는데
"와 역시 자기 대단하다. 역시 @@이야! 어설픔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난 왜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는데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스크 피기 전
마스크 핀 후
그렇다. 나는 마스크 안을 펼치지 않고 각진 내 하관 탓을(아메리카 가면 좀 먹어줄 얼굴형 일려나 그러나 여긴 한국이라서)을 하며 아베노 마스크처럼 줄기차게 착용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그 사실도 마지막 마스크를 착용할 때야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똑같은 사건을 내 친구들에게 알리니 반응은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였고 내 직장 동료들에게 알리자 "의외로 허당인데.. 의외로!"이렇게 두 가지로 갈라졌다.
나는 내가 직장 동료들에게 의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허술해 보이지 않고 꼼꼼하게 변한 줄 알았다. 그런 모습이 들키지 않게 제법 연기를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작년의 마스크에 이어 오늘의 유산균을 보고 있노라니 나란 인간은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나란 인간은 고쳐쓰기란 쉽지 않을까?
나는 나를 제법 좋아하지만 불쑥 이런 일들이 내 하루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제법 있다. 13년 전 절친의 결혼식에 짝짝이 구두를 신고 간 것을 발견하고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휘리릭 도망갔던 일이 있었다.(시트콤과 같은 상황을 제법 겪음) 짝짝이 구두 때문에 친구의 결혼식을 못 보고 온 그때의 나와 아베노 마스크를 쓰고 유산균을 6개월 넘게 1정만 섭취한 40이 넘은 나는 간극을 발견할 수 없다. 중년이 되면 20대의 풋풋함과 다르게 원숙미가 발현이 된다고 하던데 이것도 카더라 통신의 오보인 듯하다.
허술한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어릴 때의 나보다 사고도 유연해진 것 같고, 뭐든 어설픈 행동 탓에 절대 자식을 못 키울 것 같다는 주위의 우려와 달리 자식도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다. 이쯤이면 그래도 후하게 내게 점수를 주고 싶은데 불쑥 이런 것들이 메롱을 하며 '너는 변하지 않았지롱~착각하지 마시길'하면서 내 삶에 들어온다.
짝짝이 구두, 펴지 않았던 마스크, 1정 섭취한 유산균! 이런 것들과는 이제 그만 마주치고 싶다.
허술한 실수의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나로 귀결되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나의 허술함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인간은 고쳐먹기 힘들까요?ㅠㅠ
내일부터는 유산균을 2정씩 먹을 것이다.
그러면 유산균이 주는 속도도 확연하게 빨라질 것이다. 나는 빠른 속도로 주는 @@날씬 유산균의 값을 감당하긴 좀 버겁다. 다음 달부터는 나는 착한 가격의 유산균으로 갈아탈 것이다. 이 말은 음.... 날씬한 나는 슬프지만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 @@날씬 유산균 good bye! 언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 너를 2정씩 먹으면서 날씬해질게.
그땐 흰머리가 더 났을 거야. 너에게 허당 모습을 보일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만약 보이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없 지 모. 삶은 그냥 그런대로 굴러는 갈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