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에 진심인 나의 이웃에게

by 아무거나

저는 그대를 100프로 알진 못해요.

그래도 90프로는 그대가 아닐까 싶어요.

퇴근 길에 8층을 눌리는데 같이 탄 당신이 버튼을 누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물음표를 찍다가 옆집임을 알고 서로 인사를 했어요. 그대는 제가 다짜고짜 어디 다니는지 묻더군요. 평소 같으면 얼버무렸겠지만 주인집 아주머니께 그대가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직업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반가워하시더군요.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8층에 도달하고 문 앞에 오기 직전까지 자수성가한 사람이고 교육장까지 갈 뻔한 사람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대의 어깨에 메고 있는 무엇인가 툭툭 치더니 요즘은 색소폰을 배우러 다닌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지요. 그대는 내가 현직에 있는 젊음을 부러워하셨을지 모르나 저는 그대가 연금도 받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여유로운 노후가 부러웠죠.

오 색소폰에 진심인 그대여,

오늘은 주말이잖아요. 주말 아침 7시 30분부터 진심을 담은 색소폰 연주는 좀 아니지 않나요?주인 아주머니가 윗집도 공무원이고 근방이 다 선생이라 이 동네는 농으로 티처빌이라는 소문 탓일까요?그래서 큰소리 안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 그대의 색소폰 소리를 참아주는 것일까요?

층간소음 안내 멘트가 안나오네요. 제가 요즘 방학이라 평일에도 집에 있어보니 그대의 색소폰에 대한 사랑은 매일되네요. 한시간이 아니라 제법 되네요.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요. 주말 이른 아침이 아니까요.

그리고 저도 대금연수를 줌으로 하고 있어 집에서 나는 악기 소리를 아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제 대금곡은 낯선 사람들이 많아 청이 울리고 삑삑대면 저도 한 소음이 되리라는 걸 아니까요. 세종대왕님이 풍악을 울려라는 세령산이나 타령곡이 조선시대에나 hip했지, 지금 hip한 곡이 아니니까요. 저도 이날치의 범내려 온다 대금 악보를 구해서 한 번 연주 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일주일에 한번 다섯시에서 여섯시잖아요.

색소폰에 진심인 나의 이웃이여! 전 조금 더 자고 싶어요.

아 그런데 왜 내가 아는 곡을 연주하세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연주하시다가 김추자의 무인도를 연주하시는군요.


"파도여 슬퍼 말아라~파도여 춤을 추어라~"

아 근데 제가 슬플려고 해요. 자고 싶은데 자꾸 따라 부르게 되잖아요.

색소폰에 진심인 나의 이웃 그대여. 주말만은 잠깐 멈춰 주시면 안될까요?


오늘은 설날, 그대도 집에 계신가봐요. 자식분들이 안내려 오신걸까요?

설날에도 그대의 색소폰에 대한 사랑은 지칠 줄을 모르네요.ㅠㅠ

https://youtu.be/9bXaWHBec_I브로콜리어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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