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학원을 몇 달째 쉬고 있는데 미술학원 원장님께서 미술학원에서 수상한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으니 시간 나면 가보라는 초대장 문자가 왔다. 장소는 내가 졸업한 교대였다. 교대에서 하구나, 시간 되면 가고 안되면 말아야지 하고 넘겼다. 그런데 학원 선생님이 문자를 또 보내셨고 선생님의 인스타그램에도 홍보 사진이 있어 나는 "아이들, 상 많이 받은 거 축하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원장 선생님의 대댓글은 내가 생각지 못했다. " 어머니, OO이 작품도 전시되어 있으니 시간 나면 보러 가세요."라는 말이었다. '? 우리 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허긴 두 달 전 딸이 뭔 상을 하나 받아오긴 했다. 원장 선생님의 댓글이 아니면 전시된 딸의 그림을 놓쳐버릴 뻔했다. 이 날따라 나의 오지랖 sns 라이프가 퍽 고마울 수가 없었다. 딸과 동생에게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는 걸 알렸고 전시된 장소는 내가 졸업한 대학교라는 것을 알려줬다.
"오~엄마가 졸업한 학교에 가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니!"하고 딸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리고 다음 날 가기로 약속을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집순이 딸이 어제와 다른 말을 한다. " 엄마 그냥 나가기 귀찮은데 작품 보러 안 가면 안 돼?, 제발!" 이건 또 무슨 난관이지? 나도 제법 쿨하면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보다 더한 강자가 나타났다. 그래도 도에서 주는 수상자들 작품만 전시하는 전시회인데 "작품 보는 게 중요해? 그냥 보러 가지 말고 집에 있자!"라고 말하는 더 쿨한 년이 나타난 것이다. 결과는 쿨한 자의 승이 아니고 찌질한 내가 이겼다. 전시회를 보러 가기 귀찮은데 보러 간다고 입이 불쑥 나온 딸과 동생을 싣고 전시회 장소로 나섰다. 네비가 14분을 알린다. 집에서 14분 걸리는 모교를 졸업한 지 몇 년 만에 가는지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을 이런 상황에서 써야 할 말인가? 지독한 길치는 14분 만에 다행히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소도 내가 아그리파를 그리고 한국화를 배웠던 예술관 옆,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은 내가 졸업할 때 없었는데 신축된 것 같았다. 수상작이라고 하나 아이들 개인 정보 때문인지 소속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림들로 전시되어 있어 딸아이의 그림을 겨우 찾았다. 지금은 이사한 지 꽤 되는데 아직도 딸의 그림에는 어렸을 때 살던 도시가 그려져 있었다. 그때가 더 행복했을까? 겨우 찾았지만 알고 보니 내 딸이 그린 것 같았다. 만화 같은 그림에 장난기 가득한 그림, 그 그림 덕분에 몇 년 만에 나는 추억팔이 장소 나의 모교로 왔다.
<뒷모습이 마이콜일 것 같은 딸아이의 그림>
딸은 아담한 나의 모교가 마음에 드는지 " 나도 엄마 학교 다닐까?" 말을 건넨다. 우리 동생은 대학교 규모가 고등학교 같다고 비웃었고 학교가 작아서 수업 듣기는 편했겠다고 말을 했다.
미술관을 나오니 내가 반학기를 머문 기숙사가 보였고, 등나무가 있던 낡은 강의동은 새로운 모습으로 이 학교에서 주인은 바로 나야! 하고 압도적인 크기와 형태로 뽐내고 있었다.
등나무를 보니 연주회를 위해서 기타를 열심히 쳤던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기타의 기도 모르던 내가 C 코드, G코드, G7 등을 동아리 선배로부터 배우며 양희은의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뿌듯하게 연주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F와 C 코드로 손목을 꺾는 하이코드가 잔뜩 든 "해변으로 가요"를 치면서 좌절했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지금도 아주 쉬운 코드는 생각이 나지만 내 방에 줄 끊어진 기타는 짐짝처럼 애처롭게 놓여있다.
체육관 옆에는 수영장이 새롭게 들어섰다. 체육관을 보니 나의 떡 벌어진 어깨와 기럭지를 보고 체육소녀로 착각해서 재수강도 안 되는 D+를 학점을 준 교수가 생각났다. 나는 나의 의지로 조종이 안 되는 신체로 물구나무와 옆돌기, 구르기를 잘하지 못했다. 그때의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잘하는 자가 하기 싫어서 꾀를 부린 줄 착각을 하셨다. 아직도 그때의 체육 수업은 끔찍하다. 못하는 그룹으로 분리되어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며 옆돌기를 하는 내 친구를 멀뚱멀뚱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던 내가 생각났다.
집에서 겨우 14분 거리에 추억팔이 할 장소가 있다는 것은 꽤 행복한 일 같다. 무엇인가 잃지 않고 방문하는 추억팔이 장소를 가진 것도 꽤 행운이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은 추억 팔이 할 공간을 삶에서 잃었고, 세월호의 유가족들은 공간에서 사람을 잃었으니 말이다.
요즘 티브이를 보면 이런 것이 유행인데 비록 연예인이 아니라서 오그라들지만 20대의 나에게 40대의 내가 전해줄 말이 있다면
수능의 점수가 삶의 기준이 될 수 없어. 무수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너는 수능점수로 사람을 재단하고 소개팅, 미팅을 시도조차 안 했어. 그건 정말 돼먹지 못한 자세야. 점수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어. 스카이 사람들이 보면 네 행동에 기가 찰 노릇일 게야(스카이 나온 사람들도 그러면 안됩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에요)
당장의 목표에, 네 주변만 보지 말고 사회나 정치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봐.
그리고 너 늙으면 영어 쓸 일 그리 많지 않더라. 꽝인 운동 신경으로 학점은 밑바닥을 깔겠지만 체육교육과를 가! 운동을 생활화하고 건강하게 늙으면 자식들한테 짐짝 취급 안 받고 품위 있게 늙을 수 있을 거야.
아니면 국어교육과를 가. 너 늙으면 if 대개 따지더라. 만약에 국문과를 갔으면 국어교육과를 갔으면 글을 좀 잘 썼을까 하고 항상 아쉬워하더라.
아니면 사회교육과를 가. 너 근현대사 역사에 많이 취약하고 논리가 빈약하더라.
... 결론은 영어교육과는 영어 울렁증만 안 생길 뿐이지 너의 인생에 그닥 큰 도움은 안 될 수 있다는 게지.
그런데 나는 너로 돌아가기 싫어.
그때의 너보다 젊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에 필요한 넉살이 생겼고 여전히 좀스럽고 편협하지만 그때의 너보다는 더 멀리 봐, 그때의 너보다는 깊이 보는 것 같아. 그때의 너보단 살이 쪄서 날렵하진 않지만 늦어진 걸음만큼 마음도 여유로운 것 같아.
Good bye!
돌아올 수 없는 나의 20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