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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너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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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Feb 27. 2021

기성품이  편리할 것이라는 예단에 속은 적 있나요?

기성품이 오기 전까지 우린 햄볶았었지.

너가  스스로 기획하고 나에게 사진 몇 컷만 찍어서 동영상을 만들라고 했을 때는 너가 참 기특했지. 그리고 어미로서 사진 몇 컷만 찍고 동영상 편집 어플로 뚝딱 만드는 것쯤은 당연히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많이 힘들이지 않고 만들어낸 30초짜리 동영상을 만드는 것은 서로 뿌듯했고 기분이 좋았었지. 그리고 너는 스톱모션이라는 장르에 재미를 붙였는지 " 엄마, 00 책 사주면 안 돼?"라고 물었었지. 옷 입는 스톱모션, 먹는 스톱모션을 만들 것이라는 너의 거창한 계획에 겁을 먹었던 탓이라 기성품을 사면 수고도 덜고 퀄리티도 보장이 되리란 생각에 큼 사줬었지. 소풍 가기 전날처럼 물건 오기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너를 보며 나도 그 물건이 얼른 오길 바랐었지.

그리고  이틀 후 스톱모션 기성품이 도착했지. 기상 스톱모션을 만들 때 까진 좋았었어. 너가 기획했던 자체 제작보다는 사진을 더 찍었지만 이 정도쯤은 별로 수고롭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메이크업을 하는 동영상을 만들겠다고 열심히 기성품을 색칠했어. 그때도 사실 좀 귀찮았어.

 "엄마 파운데이션이 뭐야"

"그거 얼굴에 바르는 거야."

"파운데이션 녹색으로 칠해도 돼?"

"그러면 슈렉 되는데 피부 잡티 가리고 하얗게 보이려고 바르는 거야. 살구색으로 칠해."

"엄마 립스틱 초록색이나 보라색으로 칠해도 돼?"

"음 칠해도 되긴 하는데 그런 색은 개그맨들이 많이 칠하긴 해."

"그럼 분홍색으로 칠해야지."

"엄마, 블러셔가 뭐야, 하늘색으로 칠해도 돼? 엄마 아이브로우가 뭐야....."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인내심 가득한 모성을 실어

"블러셔는 젊어 보이고 생기 있게 하려고 볼에 칠하는 거야. 하늘색은 아니야. 볼터치라고 생각해. 아이브로우는 눈썹 그리는 거야."라고 매우 친절히 알려줬지.   '화장도 못하고 화장품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저런 걸 왜 샀대. 정말 짜증이 제대로란 말이야.'라는 말은 내뱉지 않았어. 이 정도면 정말 퐌타스틱 한 엄마이지 않니?

 색칠을 하고 쓱쓱 오리더니 나를 부르더군. 그리고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은 컷을 계속 찍으라고 명령하더군. 손을 1mm(약간의 과장이겠지만 내 기분에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어.) 정도로 내렸다 올렸다가 무수히 반복되는 컷을 100장 정도를 찍었지. 결과물은 겨우 1분 남짓, 100장이 넘는 컷에 결과물은 1분 남짓! 꽤 착한 성격인데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 그런데 너는 내 화에 기름칠을 했지. 수건이 빠졌다고 말이야. 수건 하나 정돈 없어도 되지 않냐고 하는 자와 수건이 중요하다는 자의 싸움이 벌어졌지. 나는  너가 알아서 하라고 해서 너는 다시 판을 벌려서 꿋꿋이 하더군. 감히 나한테 대들다니 요망하고 발칙하긴 했지만 스스로 만들었기에 칭찬해줬지.

<새로 하겠다는 불굴의 의>

스스로 그래도 한 것이 대견하여 칭찬을 해줬더니 우리의 싸움은 없던 일이 되었지.

그리고 '화장을 하는 스톱모션'을 하겠다고 했지. 아 나는 이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야. 처음부터 눈을 번쩍 뜬 물이면 되는데 렌즈를 껴야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것일까? 눈도 큰데 마스카라 컷은 왜 넣어야 하는 거니? 입술선도 분명한데 립스틱은 왜 바르는 것일까? 50초도 안 되는 동영상을 위해 나는 무려 15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야 했었지. 그마저도 배터리가 꺼지는 바람에 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순서가 뒤엉키고 둘 다 만족스럽지 않은 동영상을 얻었지.

 이 정도 엄마가 해줬으면 고마워해야 하지 않느냐는 자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은 싸가지가 바가지인 자와의 전쟁이 극으로 달했지!


기성품이 오기 전엔 행복했지.

으로 퉁치는 육아가 편할 줄 알았지. 이렇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싸가지가 바가지인 너로 빙의해서 다른 이들에게 물어볼게. 기성품이 편리할 것이라는 예에 속아 본 적 있나요? 그런 적 있나요? 없나요? 있죠? 없으면 안 되는데....

아무일이 없는 것처럼 적었군! 싸운 건 왜 안 적는 거니?

<화장품 스톱모션 완성 일기>

문제의 화장품 동영상은 첨부하려고 하면 족족 오류. 브런치도 귀신같이 망작인줄 아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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