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까 말까?

by 아무거나

인기 없는 학교에 머문 지 3년 차고 이 정도면 짬밥이 있으니 내가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해는 정말 힘들었던 돌봄, 2년 차에는 평가였다. 평가 업무도 돌봄 업무보다는 아주 많이 양반이었지만 큰 학교에서 평가를 코로나 시국에 달라진 평가 계획을 작성하고 하니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짬밥의 힘으로 쉬운 업무를 받을 줄 알았다. '교원평가와 방과 후 출석부 관리' 교원평가 업무는 전혀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그 시기만 하면 되고 매뉴얼대로 하면 되니까 학교 평가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럴 것 같았다. 방과 후 출석부 관리는 당최 왜 있는지 모르는 업무지만 인수인계를 받을 때 출석부 보고 강사들 월급을 챙겨주면 된다고 했다. 매월 돈 주는 관리? 나처럼 돈 관리 안 되는 사람에게 많은 위험이 따르지만 남의 수입이 나의 덜렁거린 성격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고 정신 무장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에 없던 방과 후 신청자 명단과 재료비, 교재비 명단을 분기별로 작성해서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왜 없는 것을 시키지? 하고 잠깐 마음속으로 화가 났지만 엑셀 파일도 강사분들한테 다 줬고 선생님은 수합만 하면 됩니다라는 행정실 실무사 님의 말에 한결 안심했다. 뭐 수합만 하면 되지.. 아 그런데 생각보다 일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나도 처음인데 행정실에서 전해지는 말이 자꾸 바뀌었다. 수용료는 1000원을 빼주는 금액을 넣으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수용료 1000원을 포함하는 금액을 넣어달라고 하고 1달분 금액이라고 했는데 3,4월 한꺼번에 합친 금액을 적어달라고 하니 행정실과 강사들 사이에 전달자의 내 입장이 자꾸 번복을 하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았다. 강사분들에게도 한 번에 명료하게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았을 텐데 문자 폭탄을 유발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내 자신이 싫어졌다. 나도 전달받은 내용이 계속 달라져 짜증이 났다. 총 11명의 강사들의 파일을 수합하는 것 꽤 힘들었다. 행정실에서는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해야 다음 주에 학생들로부터 징수를 하고 강사들 월급이 나간다고 나를 압박하고, 강사분들은 강사분들대로 3월 둘째 주에 시작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3월 셋째 주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출석부를 정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수합을 했다 싶으면 " 선생님, 출석부 명단이 좀 바뀌어서요. 새로 신청한 사람이 있어서요!" 띠로리 ㅠ.ㅠ 공문을 기안을 하려고 했으나 자유수강권 문제도 있고 마지막까지 변경 사항이 있다고 하는 분 때문에 마무리가 안되었다. 그리고 수합한 엑셀 파일도 손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년 별로 반 별로 번호대로 출석부를 정리해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 같은데 간혹 들쭉날쭉 의식의 흐름대로 엑셀 파일을 정리해준 강사분들이 있었다. 아이의 출석번호가 빠져 있는 부서도 있었다. 다음 달에는 꼭 말씀을 드려야겠다. 약속한 날짜에, 잘 구분하셔서 학년별로 반 순서, 번호 순서대로 해달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방과 후 부장 일 같기도 한데 방과 후 부인 내가 하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수업 준비도 못하고 방과 후 서류를 정비하는 중에 너무 짜증이 나서 브런치를 들어가 봤다. 런치 메인 홈에 노란 브런치 전차책 출판 프로젝트 홍보글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는 스킵했던 문구였는데 지금 나는 PC로 브런치에 접속해 있는 상태다. 모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나와 있다.

PC 버전으로 브런치를 접속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PC 버전으로 접속해 있다. 하던 업무도 짜증 나고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10편 이상 글인데 나는 10편 이상 있지 않은가? 해볼까 하고 하고 말이다.

내 글에서 기획 의도에 맞게 10편을 골라 담으면 된다고 했다. 기획의도? 내 기획의도가 뭐지? 매거진 이름은 삶의 조각보인데 내가 뭐라고 다른 사람이 굳이 찾아서 읽겠어. 이 매거진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면 10편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 딸이 쓴 일기나 시로 해볼까? 그런데 그것들도 일기만 꾸준히 모은 것도 아니고 시를 적었다가 만화 글도 적었다가 내 딸이 한 카톡테러도 있다가 도무지 한 편의 그럴듯한 기획의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분 저는 못쓰지만 제 딸내미는 좀 써요. 여기 글 좀 봐주세요.라는 구걸형 기획의도를 담고 " 저는 못쓰지만 제 딸은 써요!"로 발행을 해 볼까 하지만 구걸형이라 구차했다.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고 구걸해도 안 읽힐 가능성도 높다.

그럼 나의 글로는 무엇으로 10편을 모을까 고민을 해봐도 어떤 의도도 없고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글들 밖에 없었다. 어떤 작가님의 코치를 자세하게 해 주셨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쳤을 브런치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여기에 입문한 지 5개월이 되니 나 혼자 이렇게 끄적이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글에 진심이고 자신이 부족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글로 도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많이 진심으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글이지만 숙제를 했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학생처럼 (10개 중에 10개 다 틀리게 해 간 숙제) 발행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름은 도무지 좋은 게 기억이 안 난다. 내 글은 꾸준한 주제가 없다. 음 마치 일반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처럼 말이다.

그런데 조심스럽게 응모하고 싶다. 걱정이 하나 있다. 조심스럽게 안되고 아무거나 작가님이 000을 발행했습니다라고 누추한 곳에 들러주시는 작가님들에게 알람이 갈 것 같다.

작가님들 저 발행할 수도 있어요

"일반 쓰레기봉투에 글을 담아요!"라고요. 음 그러면 그냥 핏 잠시 웃어주시고, 똘끼 있는 한 여자가 그래도 숙제를 했구나 하고 어여삐 봐주세요.

글은 물론 안 읽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