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출근하니 쪽지가 와 있었다. 항상 일찍 출근하는 선생님에게서 온 쪽지였다.
'미안해서 어쩌나 나 너 태몽 꾼 것 같아. 네가 학년 연구실에 수박만큼 큰 딸기를 들고 오더니 앙 하고 한입 먹더라. 그거 태몽 같지 않아?'라고 적혀 있었다.
'선생님 태몽요? 우리 남편 잘 안 오는데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던데요 ㅎㅎ 이 나이에 태몽 정말 안돼요. 선생님처럼 부자가 되고 싶으니까 돈이라 굴러 들어왔으면 좋겠네유 ^^ 우리 오늘도 잘 버텨봐요. 좋은 하루!'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 그래도 뭔가 좋은 꿈같으니 복권이라도 사봐'하고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저녁에 딸아이에게 아는 선생님이 엄마 태몽을 꾼 것 같다고 말했다.
" 야, 너 큰일 났어. 너 이제 동생 생긴대. 엄마 아기 돌봐야 돼서 너랑 시간 많이 못 가질 수 있어. 동생 생기면 어쩔 거야?" 하니 벌써 우리 집 10세가 눈물이 글썽거린다.
" 아 엄마 임신하면 엄마 많이 못 보잖아. 그리고 동생 지금 나오면 나랑 말도 안 통하잖아. 그럼 엄마 많이 못 봐? 정말? " 하고 울고 있다. 우는 내 딸만큼 나도 심난하다. 다행히 태몽일 확률이 0%였지만 앞으로도 조심조심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 나이 41살 내 딸 나이 10살! 이제 내 딸은 스스로 하는 일도 제법 많아져서 내 수고로움이 확실히 덜해졌고 말도 잘 통하고 말과 글로 나를 웃겨준다. 이제 이만하면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또다시 임신과 갓난 쟁이의 육아를 한다고? 딱 세 번 연예인 몸무게를 가져본 적이 있다. 고3, 임고 시험 볼 때, 그리고 두 돌 전까지의 우리 딸을 키울 때, 내 키에 48의 몸무게는 버티기 힘들었지만 살찔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이 자식은 왜 2시간마다 깨어나서 나를 부르는지, 새벽 5시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나날을 또 반복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선생님의 수박만 한 딸기는 if에 if를 계속 재생산해내고 있었다. 큰 딸기 꿈을 태몽 꿈이 아닌 것으로 무마시킬 방법을 계속 고안했다. 그래 결심했어! 토요일 복권을 사기로 말이다.
오늘은 토요일! 딸아이의 친구와 동생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11시부터 4시 30분까지 알콩달콩 잘 놀다 갔다. 나를 초대해주셨던 딸 친구의 엄마는 오래간만에 달콤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근사한 시간을 선물해 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도 덕분에 자본주의의 꽃 , 물질(배달음식, 과자, 과일)만 제공해주면 자기들끼리 노는 신비롭고 편안 육아를 할 수 있었다. 간혹 숨바꼭질에서 술래를 해달라고 했지만 이 정도 서비스는 충분히 해 줄 수 있었다. 덕분에 읽고 싶었던 글도 영상도 맘껏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딸기 꿈을 무마시킬 행동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권 집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복권을 파는 곳도 많은데 우리 집 근처에는 가까운 복권 집이 없다. 우리 학교 학군까지 걸어 내려가야 했다. 비는 봄비처럼 보슬보슬 내리지 않고 여름 비처럼 내렸다. 이런 날은 집에서 뒹굴 하기 탁인데 흰 스니커즈는 빗물이 들어왔는지 발이 질척거려 더 기분이 나빴다. 우리 학교 근처 학군이라 엄마와 함께 지나가는 초등학생도 우리 학교 학생처럼 보여서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이란 자가 복권방을 기웃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여서다. 오늘은 비가 여름 비처럼 내렸다. 코로나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난 우산을 썼고 마스크로 내 얼굴도 가려졌다. 다행히 아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복권방에 무사히 도착했다. 로또를 오천 원 치를 자동으로 구매했다. 자동 번호를 뽑는 동안 즉석 복권이란 것이 보였다. 방법을 몰라서 아저씨께 여쭤보니 그림이 똑같은 것이 나오면 당첨이라고 하셨다. 나는 호기심에 천 원을 내고 한 장을 구매했다. 첫 번째 그림과 두 번째 그림은 꽝이었다. 세 번째 그림에서 똑같은 다이아몬드 그림이 나왔다. 오? 그렇다. 즉석복권에 당첨되었다. 아저씨께 당첨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저 당첨된 것 같은데요!" 나를 보는 아저씨의 표정이 신통치 않다. 뭐 이런 여자가 있나 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말씀을 하셨다. " 옆에 있는 금액을 긁어야 얼마인지 나오지!" 하고 한심한 애 다루는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 표정이 썩 기분 좋지 않았지만 긁으니 나는 오천 원에 당첨되었다.
복권방을 나서는 내 기분이 한결 가볍다. 비단 오천 원에 당첨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즉석 복권만 사서 오천 원을 받았다면 오천 원을 번 셈이지만 로또 오천 원 치 샀기 때문에 이득도 없고 실도 없다. 로또가 발표되기 전이지만 난 내가 당첨이 안 될 것을 알았다. 큰 딸기의 꿈은 즉석복권 오천 원 꿈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대단한 딸기 태몽꿈이 오천 원으로 무마되었다. 작전에 성공한 나는 축축해진 양말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늘은 울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햇볕이 쨍쨍이다.
어스 아워 시간을 가진 뒤 인터넷으로 뜬 로또 번호를 맞춰보았다. 딸아이와 함께 숫자를 동그라미 쳐갔다. 예상했듯이 로또는 꽝이다. 딸아이의 표정이 어둡다.
" 야, 로또 당첨 안됐어. 어떡하냐? 너 동생 생기는 거 아니야? 너 큰일났지롱!"하고 못된 어미는 또 놀렸다. 눈물이 글썽거린다. 글썽거림과 동시에 크게 운다. 늦은 저녁 당황스럽다. 솔톤으로 말하는 딸아이의 울음 데시벨이 점점 높아져서 이실직고를 하였다.
"사실은 엄마 즉석복권 오천 원에 당첨되었어! 그러니 태몽 아니야. 알았지?"
"정말?" 하고 웃음꽃이 환하게 핀다.
신이 났는지 주름치마를 입고 알로하 알로하 하면서 훌라춤을 춘다.
훌라춤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 10세에게 정성을 다해서 키우자고, 그리고 이 땅에 다자녀 부모님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41세의 태몽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알로하 알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