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는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걸맞게 서문도 명품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 1부를 쓰던 3년간의 심경을 서문에 담았다. 서문을 통해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녀는 토지 집필 중 암 진단을 받고 3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붕대를 감은 채 원고를 쓰며 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보여준다. 죽음보다 더한 상황에도 글을 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글을 쓰는 이들에게 강한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문학이 삶이었던 그녀는 육신의 고통에 투쟁하고 정신적 속박의 사슬에 맞섰다. 스스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토지를 썼다. 서문을 읽으며 처절했던 그녀의 집필 과정이 그려졌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투정 부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전문을 다 가져오고 싶었으나 가벼운 내 설명에 서문의 무게가 떨어질까 염려되어 큰 울림을 준 부분만 발췌했다. <토지>의 서문은 글쓰기 힘들 때 한 번씩 꺼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의 원고를 썼던 것이다. 백 매를 쓰고 나서 악착스런 내 자신에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어찌하여 빙벽(氷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妄想)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더란 말인가. 달리 할 일도 있었으련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으련만…… 전신에 엄습해오는 통증과 급격한 시력의 감퇴와 밤낮으로 물고 늘어지는 치통과, 내 작업은 붕괴되어가는 체력과의 맹렬한 투쟁이었다. 정녕 이 육신적 고통에서 도망칠 수는 없을까? 대매출의 상품처럼 이름 석 자를 걸어놓은 창작 행위, 이로 인하여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을 수는 없을까? 자의(自意)로는, 그렇다, 도망칠 수는 없다.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다. 용기가 없는 때문인지 모른다. 운명에의 저항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각까지 내 스스로는 포기하지 않으리.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 박경리<토지 1부> 서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