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셋째를 낳고 애국자가 되다.
#2. 정관수술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셋째 출산으로 우스개 소리로 얘기하는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경제적인 압박에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부부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했고 피임에 대한 부담감이 심했다. 아무리 피임을 잘한다고 해도 혹시나 하는 상황을 걱정하게 됐다. 불편함과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정관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어떻게든 가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뭐든 아끼던 시절이었다. 정관 수술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공동구매가 있었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었다. 거의 반값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선택보다 가계에 보탬이 되는 선택은 없었다. 사람 몸에 하는 수술인데 싸다고 대충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로 예약을 하고 수술을 하게 됐다.
막상 수술 예약을 하고 나니 걱정이 됐다. 먼저 수술한 친구가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팠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수술 후에는 정력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수술을 앞둔 나를 골탕 먹이려고 약간의 장난을 섞어서 한 말이겠지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관 수술에 대한 두 가지 속설이 있었는데 실제 경험자인 친구의 이야기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걱정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수술할 때 아픈 건 잠깐 참는다고 해도 정력이 약해지는 건 계속되기에 아직 혈기 왕성한 남자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내에게 고민을 얘기해 볼 만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어서 말을 아껴야 했다. 정관수술을 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피임을 하거나 아내가 피임 수술을 해야 한다. 철저한 피임은 사람이 하는 거라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내가 수술하는 방법인데 차마 그 방법은 선택할 수 없었다.
혼자서 긍정의 생각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의사들도 정관 수술과 정력과는 무관하다고 하는데 친구가 겁주려고 장난친 거야'라며 자기 암시를 했다. 하지만 걱정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로 검색을 해봐도 정관수술과 정력에 대한 글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안 봐야 되는데 그 글들을 열어서 다 읽어 보았다. 도움이 되긴커녕 더 불안해지기만 했다.
불안한 시간도 똑같이 흘렀다. 드디어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실은 어릴 적 포경 수술을 할 때와 다를 게 없었다. 누운 상태로 배꼽 위치에 하얀색 천으로 막혀서 수술 장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소리와 냄새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싹둑" 또는 "치이익" 무언가를 자르고 불로 지지는 소리와 살이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정관을 당길 때는 미리 알려줬고 아프면 마취를 더 해주겠다고 했는데 판단하기가 애매했다. 정관을 당길 때마다 아랫배가 찌릿했다. 마치 축구공에 중요 부위를 맞았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못 참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고통이라 견딜만했다.
정관수술에 대한 속설은 속설일 뿐이었다. 수술의 고통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고 병원마다 의사마다 차이가 있을 순 있지만 고통스러운 통증은 없다. 통증이 있더라도 남자라면 한번 이상은 겪어본 익숙한 아픔이다. 가장 걱정을 많이 하는 정력에 대한 속설도 잘못된 속설이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자신의 생각에 달렸다. 수술이 정력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다. 차라리 잘못된 식습관, 운동부족을 걱정하는 게 낫다.
이로써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