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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백조 Jul 30. 2022

실은 내 이야기

  워크보트 출항 후 3번째 이야기

실은 여성의 연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곧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조신하고 참해야 시집 잘 간다.’, ‘여자가 드세면 팔자 사납다.’ 조선시대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아니다. 2000년대 결혼하기 전까지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목소리가 커서 집안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조신하고 참하지 못해서 시집 못 가면 어쩌지, 사람들 눈에 팔자 사나운 여자로 보이면 어쩌지 하며 겁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살면서 안 좋은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 것인데, 안 좋은 일이 나에게 닥칠 때면 나 자신을 원망하기 급급했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여성으로서의 모습에서 어긋났기 때문에, 복 받는 표본적인 여자처럼 굴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처럼.  


여성으로서 한 치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음을 보여주고, 사회 순응적인 사람으로 내비치려면 결혼, 출산, 육아 돌봄을 전적으로 떠맡으면 된다. 진짜 그랬다. 결혼하고 나서 나를 겁나게 했던 말들이 별안간 쏘옥 들어갔다. 이게 바로 어르신들이 말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난다는 것인가? 그래서 이제는 어른 취급하며 존중하겠다는 것인가? 헷갈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존중이 아닌 불구덩이에 들어간 여성 본연의 모습에 합류하였으므로 네 삶도 이제 궁금치 않다는 뜻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의 전쟁을 치르면서 환상이 와르르 깨지는 순간이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젠장, 왜 아무도 안 알려주었던 거야.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다들 아닌 척, 괜찮은 척, 고상한 척만 하고 말이야.’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특히, 애 낳는 것이 가장 쉬웠다고 웃으며 말한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의아했고, 엄마가 신경 써서 키운 아이는 겉보기에도 다르다고 말한 분들을 생각하면 왜 나의 족쇄를 채우려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라도 옆에 있었다면 붙잡고 왜 딸을 조신해야 한다고 가르쳤냐고, 왜 순종하고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여자의 숙명이라는 정신 교육했냐고 따졌을 텐데. 아쉬운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 한풀이할 엄마가(먼저 경험했을 친애하는 나만을 위한 여성 선배가) 옆에 없었다. 


사실 사회에서의 여성의 책무는 몸과 마음을 바쳐 사회를 위해 일할 줄 아는 쓸모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소녀 시절 꿈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혼 후에는 인생을 희생하도록 종용해왔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에 엄마가 되면 저절로 강해질 줄 알았으나 난 왜 계속 약한 것 같아(아니 더더욱 약해진 것 같아), 난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했던 적도 있다. 또, 성공한 아들 뒤에는 늘 희생한 어머니가 있어 나도 그 성공 서사 속 주인공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난 내가 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기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로웠다. 동네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해도 풀리지 않았다.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저 함께 핏대 세울 여성 동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성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되지만, 그 길을 뚫고 갈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해 주고 위로받을 선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지켜줄 사회 시스템이 견고하게 작동하지 않아서 우리가 희생하게 된 것이라고, 그런데도 아직 사회 시스템은 바뀔 생각을 안 하니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우리가 머리를 모아보자며 힘을 모을 여성들과의 연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난 아직 원하는 모양새의 연대의 힘을 모으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대신 여성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대리만족하거나, 아무도 끼워주지 않는데 혼자 괜스레 그 무리에 끼어 함께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일종의 연대에 가담한 것이다). 스트릿우먼파이터(스우파)가 그랬다. 그녀들의 거침없는 말투와 파워풀한 춤에 흥분했고 그 흥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거세졌다. 처음에는 왜 그리 열광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몰랐다. 워낙 힙합을 좋아하는지라 그 계열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나만의 특수한 취향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하나의 생각에 멈추게 되었다. 


‘여자도 이렇게 춤을 출 수가 있다고?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씹어먹을 듯한 살벌한 표정과 터질 것 같은 근육을 보이며 남성 못지않은 에너지와 파워를 보인다고?’ 


내가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너무 상반된 모습에 나의 족쇄가 끊어지는 시원함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소리 들었던 쎈 캐릭터가 사실은 괜찮았고, 숨기고 지낼 필요가 없었다며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시대를 잘 못 타고나서 아쉬울 뿐이라며 웃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여성의 연대에 목마르다고 고백한다. 실은 내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바뀌어야 할 것은 바뀌면 좋겠다. 나의 딸을 위해. 그러나 어떻게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확실한 것은 계속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여성을 위한 스포츠 플랫폼인 위밋업스포츠 대표님들과 인터뷰를 했다. 연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 간의 이해라면, 축구나 농구와 같은 팀 스포츠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동료애를 바탕으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고 소통하는 것. 결국 몸을 움직이면서 연대하는 방식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는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아, 여성이 팀으로 협업하며 연대하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 만연한 사회라서 여성끼리 함께 협력해 나가는 경험조차 만들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실은 나의 이야기였던 여성의 서사가 다른 힘을 가지려면 어떤 여성의 연대를 만들고 쌓아야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잘 봐. (이제부터는) 언니들(엄마들)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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