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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건기 Jun 17. 2024

하울의 움직이는 성

나를 구원할 때 그를 구할 수 있다

 꿈에 그리던, 3번의 입시를 거쳐 드디어 의대생이 된 나에게도 꿈 같은 예과 시절이 지나고 입시보다 몇배는 더 치열한 본과 과정이 시작됐다. 어제까지 실 없는 농담을 주고 받던 동기들의 눈빛이 무섭게 변하고 또 다시 고독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처음으로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 개봉한, 드디어 내가 소개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중에서 일본과 한국 개봉이 같은 해였던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소녀 소피가 황야의 마녀의 저주에 걸리며 할머니가 되어버리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갑자기 할머니가 된 소피는 더 이상 집과 가게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을을 떠나 황무지로 향했고, 여기서 순무로 된 얼굴을 가진 허수아비 카브의 도움을 받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들어가게 된다. 하필 심장을 훔쳐간다는 하울의 성을 마주했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 보였지만, 나는 그 순간 황야의 마녀가 저주를 건 직후에 비웃듯 건넨 말이 생각났다.


"인간에게는 말할 수 없는 저주에 걸렸으니, 하울을 찾아가 보시던가."



 3번의 입시에 도전했던 수험생 시절, 나는 요즘 말로 '뼈말라'인 상태였다. 아마 무언가 제대로 된 식사를 매번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대생이 되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인지 예과 2년을 보내며 나는 꽤나 체중이 늘어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가끔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의과대학 본과에 들어가며 생애 처음으로 헬스장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그 시절보다 훨씬 발달해서인지 운동을 통한 자기 관리가 정말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 같지만 당시만 해도 헬스장 기구 앞에 줄을 서는 문화는 없을 때였다. 다르게 말하면 운동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지금처럼 쉽지는 않았던 때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은 유튜브가 전세계적으로 조금씩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행히도, 나는 3번이나 입시를 준비하면서 영어에 꽤 자신감이 생겼고 유튜브를 통해 영어로 된 운동 관련 콘텐츠들을 찾아보며 어느 근육을 자극하기 위해 어떤 부위를 운동해야하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우연히, 운이 좋았던 것인지 그 시기에 나는 의과대학의 꽃이라는 해부학 실습을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내키지 않지만 가업에 따라 모자 가게를 운영하고, 늘 동생을 위하고, 화가 나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것에 익숙했던 소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울과 함께하며 여러 사건들을 겪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소피는 서서히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는 때가 많아져 갔다. 그렇게 다시 소녀의 모습이 될 때들이 스쳐 지나갔고, 어느날 꿈에서 소피는 하울을 사랑하기에 저주에서 구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꿈속의 하울은 대답한다.


"네 저주도 풀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돕겠다는거야?"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유튜브를 통해 운동과 근육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것을 해부학 실습을 통해 매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과 비만치료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비만치료와 운동에 관한 논문은 매일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걸 전부 찾아볼 정도 부지런하지 못한 나에게도 유튜브를 통해 요약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 있었기에, 나는 그때 이미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할만큼 '다이어트', 그리고 '비만치료'라는 것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하울의 말처럼, 스스로도 구원할 수 없는 주제에 누군가를 도울 수는 없다.



 아무리 식단 조절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결국 다이어트에 대한 내 의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그놈의 아랫배와 러브핸들은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대체 왜이 두꺼운 지방 덩어리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스트레스를 주며, 겨우 모두 없앴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체중이 다시 늘어날 때는 또 가장 먼저 나를 괴롭히는건지, 이것을 먼저 연구하고 해결하는 것이 내게는 '다이어트 전문' 의사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구원할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


 각자의 고민 부위에 맞는 약물 사용, 비만치료에 동반되는 식이조절,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법, 그리고 플랜에스의원만의 특별한 '뺏주사' 까지, 지금 내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나를 찾는 이들을 위해 처방하고 조언하고 함께 하는 모든 방법들은 그렇게 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자신 있게 그들에게 손을 내밀며, 그들의 목표로 가는 길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동반자이자 상담자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지막에 이르러 소피는 결국 하울과 캘시퍼, 그리고 소피 스스로를 모두 구원해낸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목표를 위해 늘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스스로에 대한 구원을 얻고 서로를 구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나를 구원하는 길을 먼저 찾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구원했던 방법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와 공부 더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확신한다. 오늘 나와 만난 당신의 내일은 오늘보다 아름다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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