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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건기 Jun 24. 2024

벼랑 위의 포뇨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하지만

 2008년 개봉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벼랑 위의 포뇨>는 어딘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기존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물을 이용한 놀라운 연출이나 가상의 고생대 생물들에 대한 묘사,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에 대한 표현 등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영화의 웅장함은 그대로이지만, 무언가 다른 작품들과는 이야기의 서술이 달라진,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의 표현대로 '룰이 뭔지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이다.




 항구 마을에 사는 5살 소년 소스케는 어느날 바다에서 유리병에 낀 작은 물고기, 포뇨를 발견한다. 인면어인 포뇨가 금붕어라고 생각하는 소스케는 유리병을 깨트려 포뇨를 구해주고 양동이에 담아 데려온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유치원에 가는 차 안에서 샌드위치를 나눠주기도 하고, 소중하게 물을 갈아주고 '예쁜 금붕어'라며 친구와 할머니들에게 자랑하기도 하며 포뇨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스케는 곧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로 인해 헤어짐을 맞기도 하지만, 포뇨를 걱정하고 기다리며 양동이를 집 앞에 두기도 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기분이 안좋은 상태로 있기도 한다. 그러다 인간 소녀가 된 포뇨가 바다를 달려와 품에 안기자, 소스케는 단번에 포뇨를 알아보고 인간이 된 포뇨와도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좀 맥락이 없고 연결이 안되는 서술 같겠지만, 이 영화가 원래 그렇다. 어쨌든 소스케는 물고기인 포뇨도, 소녀가 된 포뇨도 모두 아끼고 좋아한다는 게 중요한 이야기니까.



 많은 이들에게 그렇겠지만 내게 소스케가 포뇨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처럼 별다른 맥락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어머니이다. 내 어머니는 뭐랄까,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고양이 같은 분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생각과 영역이 아주 확실하고 타인에 의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 그런 어머니를 나는 그 자체로 사랑한다. 하지만 '너 낳고 이렇게 됐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 나는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찾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비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되자마자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가 기억이 나는 때부터 떠올리더라도 '늘씬한' 체형은 아니셨다. 그러니까 '너 낳고 이렇게 됐어.'라는 말을 늘 농담으로 하셨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양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시기에 내가 어떤 체중 감량에 대한 방법을 제시했을 때마다 저항이 꽤 있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엄마, 이렇게 이렇게 해서 감량 한번 해보자!"


라고 말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을 때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서 같은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잊어버리지 않도록 정리하며 이야기 드리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머니는 내가 제시한 방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신다. 그리고 그게 효과를 보면서 서서히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변화를 지켜보는 과정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물론 나는 당연하게도 어머니에게 무리한 방법을 제시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환자에게 그러는 것처럼, 건강을 해치지 않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할 수 있는 '비만치료'에 대한 방법을 이야기 드릴 뿐이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찾아 드리기 위해 세운 목표는 한달에 0.5~1kg의 감량, 그리고 그보다 먼저 건강한 습관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어머니를 변화 시키는데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습관은 매번 식사 30분 전마다 설탕 없는 두유, 혹은 단백질 음료를 드시는 것이다. 단백질이 식사 시 섭취하는 음식물보다 먼저 위장에 자리를 잡아서 전체적인 식사량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식사와 식사 사이의 혈당으로 인한 배고픔을 줄여줄 수 있는 좋은 습관이라 환자들에게도 늘 권하는 식이조절 방식의 하나이다. 물론 그만큼 밥이 좀 덜 맛있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다시 포뇨로 돌아가서, 영화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소스케의 포뇨를 좋아하고 아끼는 순수한 마음이 세계를 재앙에서 구하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어쨌든 소스케가 포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중요한 이야기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궁금하면 넷플릭스 등에서 영화를 한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어머니로 돌아와서, 내가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찾아 드리고자 시도했던 여러 방법들과 그것을 어머니께 설득하는 과정은 내가 의사로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비만치료'를 위해 찾아온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과 상담을 통해 나누는 대화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적용하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과 이야기라면, 나와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이라도',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나를 만나는 이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사랑했으면 한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찾아 드리고 싶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목표가 있기에, 그들에게 나는 의사이기 이전에 사랑스럽고 행복한 변화를 함께 하는 사람이고 싶다.



生まれてきてよかった。

태어나기를 참 잘했다.

2008, 지브리 스튜디오, <벼랑 위의 포뇨>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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