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낭만이란 대체 뭘까, 가수 최백호님의 <낭만에 대하여>를 듣다보면 가끔 그런 실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랫말처럼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를 마셔본 적도, 밤 늦은 항구의 슬픈 뱃고동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나는 낭만을 모르는 사람인걸까. 아니면 또 노랫말처럼, 낭만이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올 것일까. 사실 나는 아직도 낭만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1992년 영화, 국내에선 200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 로소'는 나와는 다르게 낭만을 꽤 잘 아는 사내, 아니 '돼지'이다. 그는 아드리해에서 하늘 위의 해적인 '공적'과 싸우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자신의 전용 비행정인 '사보이아 마르케티 S.21'을 온통 붉게 도장한 채 뛰어난 비행 실력을 뽐내는 최고의 조종사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에이스 파일럿이기도 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이루는 사건에서 포르코는 공적단을 처리해줄 것에 대한 의뢰를 받지만 별로 흥미가 없는 듯한 태도로 거절하려 한다. 그러나 곧 무전기 너머에서 '어린 아이들'이 납치 될 것이라고 알리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꽤 짭짤하겠다.'라며 자신의 붉은 비행정을 이끌고 출격한다.
이 와중에 아이들을 납치한 공적단 '맘마유토단'은 비행기에서 신나는 모험이라도 즐기는 듯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에 정신이 없었고, 이 때문에 기관총도 제대로 쏘지 못한 채 격추 당하지만 포르코가 의뢰를 완수하고 받는 돈을 나눠주기로 해 '수리비는 건졌다.'며 좋아하다 얻어 맞는 단원까지 있을 정도로 뭔가 악당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이렇게 정신 없는 소동이 끝나고 바로 또 따로 오긴 했지만 같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낭만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포르코에게 하늘 위에서의 싸움에 타고 나가는 전용 비행정이 있다면 내게는 '비만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전용 주사가 있다. 이름은 '뺏주사', 대학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한 동물 실험으로 지방 세포 수와 크기가 37% 감소하는 것이 확인된 내가 직접 연구개발한 스테로이드 성분이 없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방분해주사이다. 작년 5월 이후 17,000명 이상이 선택하며 입증된 효과로 포르코와 그 비행정처럼 꽤 뛰어난 실력을 증명하기도 한 나와 우리 플랜에스의원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다.
뭐든 의학적으로 '만능'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의 효과를 최소한의 부작용으로, 그리고 일상에 지장이 없도록 하면서 환자가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연구를 통해 개발한 주사이다. 환자가 고민하는 부위에 따라 레시피를 달리해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범용성도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전에 이야기했던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Do No Harm', 내 신념에도 부합하는 주사로 지금도 여전히 연구를 통해 더 발전 시켜나가고 있는 나의 '비만치료'에 대한 기술적인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환자에게 늘 식이조절과 운동이라는 다소 고루하고 뻔해보이는 방법을 무조건 병행하기를 권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또 나 역시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비만치료'를 늘 해나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치료법도 운동과 식이조절이 없다면 '비만'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낭만이란 정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마시는 '도라지 위스키' 한 잔 같은 것이라면, 나는 어쩌면 포르코만큼은 아니라도 '낭만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 포르코는 조국을 배신하고 현상금 사냥꾼이 된 돼지이지만,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의 에이스 파일럿이었기에 영화속에서 이탈리아의 정권을 잡은 무솔리니로부터 공군 시절의 친구를 통해 사면을 전제로 한 공군 복귀를 권유 받는다. 하지만 수배된 상태로 무솔리니 정부에 쫒기면서도 포르코는 '인간'들의 전쟁에 다시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그저 쫒기는 신세의 현상금 사냥꾼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그는 시대가 변화했다고 해서 거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닌,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본인의 신념을 지키고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르코가 모든 면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단골이었던 피콜로 정비소에서, 포르코는 17세 소녀 피오에게 자신의 비행정 수리 설계를 맡긴다. 그리고 정비소의 사장인 피콜로 영감이 보여준 최신 엔진도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받아들인다. 피오와 함께 아드리아노로 돌아가는 것 역시, 또 한참을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받아들인다. 포르코는 뭔가 피오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드리아노에서 다시 만난 공적단에게 피오를 '피콜로 정비소의 설계주임'이라고 소개하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다 낡은 비행정을 타고도 최고의 비행 기술을 보이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최신 기술의 엔진과 포르코에게는 받아들이기 꽤 힘들 17세의 어린 소녀 설계 기술자도 편견을 버리고 인정하는 새로움에 대한 포르코의 태도는 그가 시대의 변화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고집'이 아닌 '낭만'으로 보이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의과대학 본과 시절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비만치료'에 대한 관심을 가진 후, 지금까지도 늘 매일 업데이트되는 '비만치료'에 관한 논문과 운동법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대생 시절보다 지금은 당연히 더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쌓인 지식과 환자를 직접 대하며 겪은 케이스에 대한 경험이 있기에 정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이 더 생겼고 가치 있는 정보와 시도해볼만한 치료법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스스로에게 적용해보기도 한다. '비만치료'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기에 잠깐 놓치는 순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스스로의 몸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비만치료'에 대한 공부와 연구를 시작하였기에 여전히 운동과 식이조절이야 말로 '비만치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방법론은 바뀔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먹는 것을 조절하지 않으면 결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신의 기술과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과 신념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스스로 세운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 낭만이라면 그래 나는, 낭만주의자가 맞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낭만주의자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