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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건기 Jul 08. 2024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노력의 배신에도 절망하지 말자

 너구리는 뭐랄까, 시골에서 자란 내게도 익숙하지는 않은 동물이다. 어딘가 좀 귀여우면서도 영악해보이기도 하고, 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렵지만 또 왠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드는 낯설지만 이상하게 친숙한 동물. 내게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1994년 작, 국내에선 2005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 나오는 너구리들도 그런 존재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비만치료', 그러니까 '다이어트'를 하다보면 어떤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처음에는 식이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며 목표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일이 즐겁고 또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붙어 더 의지를 다지며 노력하게 되지만, 꼭 어느 시점부터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 '벽'이 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러브핸들과 아랫배였다.

 


 목표를 정하고,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다이어트'라는 목표가 그냥 우스갯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나와 만나는 '비만치료'를 결심한 이들에게는 정말 진지한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한 목표가 어떤 벽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미 변화를 경험했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는데, 갑자기 어제까지도 끝이 보이는 것 같던 길이 영원히 닿을 수 없을만큼 멀게 느껴진다면,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좌절하지 않기 어렵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너구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신도시 개발을 위해 파괴되고 사라지는 서식지를 지키기 위한 '타마산'에 사는 너구리들의 투쟁기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인간들에 대항하기 위해 '변신술'을 익히며 벌어지는 너구리들의 소동과 낙천적인 모습은 꽤나 유쾌하고 귀엽기만 하지만, 그렇게 익힌 변신술을 통해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사보타주를 벌이고, 실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고, 실제 두려움에 떠나는 공사 현장 인부들이 나오는 장면은 꽤 비장한 투쟁으로 그려진다.




 너구리가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너구리들이 벌이는 사보타주로 인해 공사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너구리라는 존재가 단순히 '착하고 순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강경파 너구리들에 대한 반감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서식지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대작전'은 너구리들이 이뤄낸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만나는 벽은, 인간의 욕심이니까.



 그리고 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벽을 만났을 때 좌절하기도 하지만, 욕심이 있기에 그 벽을 뛰어 넘으려 더 노력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비만치료'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 부위별 맞춤형 약물 사용 및 '뺏주사'를 연구 개발해 냈고, 내게 고민이던 러브핸들과 아랫배 역시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벽 너머의 목표가 아닌 충분히 도달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만치료'에 있어서 약물이나 주사가 만능이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운동과 식이조절이 병행되어야 부작용이 없는 진정한 비만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 나를 만나는 이들이 스스로의 결심과 목표에 좌절하지 않고 닿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맞춤형 약물 사용과 '뺏주사'를 연구했고, 또 지금도 연구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벽을 만나더라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끝에서, 너구리들의 투쟁은 결국 많은 희생과 죽음만을 남기고 실패로 돌아간다. 변신술이 가능한 너구리들은 결국 둔갑을 하고 인간 세계에 녹아들어 살아가고, 변신술을 쓸 수 없는 너구리들은 그들의 투쟁이 남긴 작은 성과인 보호구역에서 살아간다. 인간 세계로 들어온 너구리들은 익숙하지 않은 삶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보호구역은 너무 좁고 먹을 것도 모자라기에 여전히 그들의 삶은 고달프지만 그래도 너구리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만치료', 그러니까 '다이어트'는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을 결심한 스스로가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이것은 결국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비만치료' 전문의원의 의사로서, 나는 그들이 '나의 아름다움', 그리고 '나'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누구나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조력자이자 상담자가 되어주고자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내일은 오늘보다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タヌキだってがんばってるんだよォ。

너구리도 열심히 살고 있어.

1994, 지브리 스튜디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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