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몇번째인지도 헷갈리는 ‘마지막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미 수차례 은퇴와 복귀를 반복해왔기에 정말로 마지막 작품이 될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감독 본인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자전적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가지는 선수들 마저도, 구단의 요구나 성적의 하락에 따라 밀려나는 슬픈 순간이 아닌 스스로 결정한 마지막이 허락되는 이들은 정말로 극소수이다.
40년이 넘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은퇴 투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정한 마지막 시즌을 장식한 선수가 단 두명뿐이라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가를 넘어 한 인간이 마지막 순간까지 빛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금까지는 마지막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내가 처음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에 빠져든 계기였던 ’나‘의 길을 함께 하는 ’조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일본의 베스트셀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남긴 주인공 어머니의 편지, 극 초반에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좀 허당 같은 느낌이 있는 왜가리 남자의 모습, 군국주의의 수혜를 받는 군수사업자지만 아들을 지키는 일만은 진심을 다하는 아버지, 언니의 아들인 주인공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하는 새 어머니, 주인공에게 현실에서나 이세계에서나 진심을 다해 도움을 주는 키리코까지 영화는 주인공 마히토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해왔던 것처럼 나는 매일 함께 동네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주던 아버지, 내가 하는 제안과 설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습관까지 바꾼 어머니, 그리고 시골 마을에서 부터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이끌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서울에 비해 교육 환경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시골 출신으로 재수, 삼수를 거치면서도 목표를 향한 길을 잃지 않고 강남 한복판의 ‘비만치료’ 전문의원 원장이 되기까지 앞만 보고 걸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이 있었기에, 나와 만나는 이들에게 나를 만든 사람들이 그랬듯 단순히 ‘의사’가 아닌 친구이자 조력자, 믿을 수 있는 상담자가 되어주고자 한다.
첫번째 브런치북 연재를 마치며,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했던 적이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비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서, 언론사 등을 통해 어떤 전문 지식이나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꽤 많지만 오롯이 ‘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다지 재밌는 사람도, ‘강남 의사’라는 이미지처럼 탄탄대로만 걸어온 엘리트도, 그리고 엄청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이야기꾼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주고 좋아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제 나는, ‘비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서 늘 그래왔듯 연구개발과 공부를 통해, 그리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가진 목표와 결심을 함께 하며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스스로 들어간 ‘이세계’에서 자신을 현혹하고 괴롭히는 모든 유혹과 시련을 이겨낸 마히토처럼, 나를 만난 사람들이 ’다이어트‘라는 터널의 끝을 지날 수 있도록 함께 하기 위해서,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아름다울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의사로서 나의 마지막에 대한 기록을 남길 그 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