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변해도 본질은 같다
옛것은 모두 낡아서 버려야만 하는 걸까.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1년 작 애니메이션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내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영화였다.
도쿄 올림픽을 앞둔 1963년의 일본, 작은 항구 도시 언덕 위의 ‘코쿠리코 하숙장‘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소녀 우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가 나에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지는 나도 몰랐지만 말이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이자 개최국의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는 선전의 장이다. 요즘은 어떨지 몰라도 고대 올림픽을 다시 부활 시킨 이후로 아주 오랜 시간 그런 역할을 해왔던 것만은 사실이다. 1988년 우리의 서울 올림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세계인의 우리에 대한 인식과 우리 스스로의 삶을 아주 많이 바꿔놓는 것처럼, 1964년 패전 후 겨우 20년이 채 되지 않았던 일본에게도 올림픽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리고 도쿄를 다시 국제적인 도시로 올려놓는 시험대였다. 그러니까 이 말은 곧 가장 최신의, 첨단의, 혁신적인, ‘트렌디한’ 도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옛것들을 부숴야했다는 의미이다.
서울 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서울과 수도권에서 벌어진 ‘도시정비’ 사업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기억하는 세대는 이미 지금 시대의 ‘트렌드’와는 별 관계 없어진 2024년이지만 우리는 우리 역사를 통해 트렌디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혀지게 하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고난고등학교 문화부실이 모여있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탱‘은 일본의 트렌디한 도시정비 사업과 관련이 있었을 옛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오래된 건물은 위험하다. 그리고 보기에 흉물스러울 수도 있다. 이건 아주 당연한 상식이니 나는 영화에서 카르티에 라탱을 철거하고 새 동아리 건물을 짓겠다는 고난고등학교 교장과 이사장의 생각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 옛것에는 그 오래된만큼의 역사와 가치가 있다.
나는 ‘비만치료’ 즉 다이어트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서 사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트렌드에 뒤쳐지면 회복할 수 없게 되는 게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옛것’을 고수하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트렌드가 아무리 변화하고 발전하더라도 본질은 절대 변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운동과 식이조절, 계속 강조하지만 결국 이것이 병행되지 않으면 어떤 혁신적이고 트렌디한 방법도 본질적으로 ‘비만치료’를 완벽하게 해줄 수 없다. 이게 내가 고집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옛것’이라 할 수 있을 신념이다. 오랜 연구와 실증을 통해 쌓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트렌드만 따른다고 해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주인공들은, 옛것을 지키기 위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건물 청소와 정비 같은 최선의 노력을 보인 후,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존재일 이사장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꽤 괜찮은 어른인 이사장은 그들의 노력과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보고는 소년, 소녀의 노력을 지켜주기로 결정한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깨달음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노력하고 연구개발을 통해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으면서 내 신념에 대한 결과를 내야한다. 그게 내가 내게 찾아온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옛것을, 신념을,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결과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전엔 이렇게 좋았으니까.’ 같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우미와 슌이 그랬던 것처럼 정면돌파만이 답이다.
나는 이것을 알기에, 오늘도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고 늘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설득한다. 운동과 식이조절이야 말로 ‘비만치료’의 본질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