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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Mar 08. 2022

집돌이의 코로나 극복기.

[부제: 일과 휴식을 구분하는 법].

끝나지 않는 위태로움, 코로나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밖을 돌아다닐 자유를 억압받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단절'이라는 문제와 마주해야만 했어요. 뜻밖에도 단절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은 안식을 얻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해 보기도 하며 사람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삶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절의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당연하게도 안타까운 문제들이 더 극심히 두드러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을 조명해 볼 순 없으니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제 자신밖에 없으니까요. 비슷한 말을 핸리 데이비드 소로도 자신의 책 <월든>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너무 제 얘기만 하기보다는 좀 더 확장성이 있는, 저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집돌이의 고민



저는 흔히 말하는 '집돌이'에요. 집에 있는 걸 아주 좋아하며 외출은 꼭 필요한 일정이 아닌 이상 거의 하지 않아요. 약속도 자주 잡지 않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나갈 일이 생겼을 때 밖에서 해야 할 일을 한 번에 다 끝내려고 최대한 궁리를 하죠. 에너지를 다시 채우기 위해선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지극히 내향적인 인간입니다. 어쩌면 저처럼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코로나의 여파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저는 코로나로 인해 큰 불편을 겪진 않았어요. 초반에는 말이죠. 물론 일상생활에 다소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애초에 집 밖을 거의 나서지 않으며 자가격리를 스스로 실천해왔기에 그럭저럭 견딜만했어요. 하지만 이 또한 지속시간이 길어지니 점점 양상이 달라지더군요.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씩 밖으로 나가고 싶어질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게 만약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라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방역 패스가 도입되면서부터 심리적인 압박감과 불편감이 극심해졌어요. 그전에는 조심히 밖을 돌아다니던 친구들도 본격적으로 몸을 사리며 약속을 취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맘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더욱 집을 벗어나지 않게 되었죠. 새로운 일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더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던하게 잘 지내고 있던 제 마음도 점차 흔들리게 되었어요.



저와 비슷한,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심리적 불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어요. 어쩌면 사람을 만나며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보다는 고통이 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요.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저 집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기쁜 건 아니기 때문이죠. 자신이 집에 있기를 선택하여 머물기에 기쁜 것이지, 강제로 집에 '넣어져' 있다는 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일지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기 마련입니다.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집에만 있는 건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더군요. 코로나로 인해 생긴 제약이 그들만의 생활 체계를 망가뜨리게 된 것입니다. 집돌이의 고민도 큰 맥락에선 생활 체계의 붕괴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코로나 시대 전과 후에서 똑같이 집에 박혀 있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또 한 가지 저와 집돌이 동지들의 고민은 바로 집과 직장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것입니다. 집은 우리들에게 있어 '성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업무나 스트레스 같은 해로운 것이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공간이죠. 그러나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집은 더 이상 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선 같은 집돌이어도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집을 벗어나지 않아도 되니 더욱 기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에도 언제든지 상사의 전화가 걸려올 수 있다는 건 분명 집돌이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기도 합니다.



내향형 인간들. 집돌이와 집순이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요? 제 생각이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깊이 고민해 보고, 저만의 답을 내린 후 직접 실천해 보고 있습니다. 꾸준히 실천해 본 결과, 꽤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합니다. 간단히 한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 보고자 해요. 다만 이 방법은 집돌이와 집순이,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에 한정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집으로 출근하자



그 방법은 바로 '집에서 출퇴근하기'에요. 좀 더 설명을 덧붙인다면 계속 집에 있더라도 심리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걸 통해 '경계'를 다시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무너진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 생활 체계를 새롭게 정비해 볼 필요가 있어요. 먼저 저는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를 업무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제 맘대로 일하는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건 제가 프리랜서인 덕분이죠. 일반 직장인이라면 업무시간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해질 겁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집에 있더라도 '출근하는 행동'을 해본다는 점이에요. 저는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잠시 집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어디론가 출근하는 상상을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올 땐 사무실이라고 생각하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요. 상상으로나마 집이 아닌 회사로 출근해 보는 거죠. 그 후 위에서 말했던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엔 절대 혼자 집에 있을 때처럼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옷을 갈아입지도, 침대에 눕지도 않습니다.



다소 이상해 보이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이 작은 행동이 집을 다시 '집답게' 느끼도록 해주는 데 꽤 효과적입니다. 공간이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심리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하기도 하거든요. 공간이 바뀌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맥락이 바뀌기도 합니다. 물론 조금은 비약이 있긴 하지만요. '화가 나면 일단 바람을 쐬러 나가라'라는 말도 있죠. 이 또한 굉장히 심리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을 바꿈으로써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죠. 인간 심리의 작동 원리는 대부분의 경우 유사한 조건에서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공간을 바꿈으로써 감정의 맥락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달리 말해, 같은 공간이라도 심리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같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계속 집에 머물더라도 심리적인 경계를 느끼도록 만듦으로써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휴식에도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왠지 언제 일을 해야 하고, 언제 쉬어야 할지가 모호해지곤 합니다. 그리고 계속 집에 있다는 사실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죠. 그러다 보니 업무 능률도 떨어지고, 쉬면서도 일 생각을 놓지 못해 쉬어도 쉬는 게 아닌 듯해 괴로워집니다. 일과 휴식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니 점점 자신을 비난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됩니다.



현재 출근해야 할 직장이나 업무가 따로 없더라도 이 방법을 사용해 보는 걸 추천드려요. 시험을 준비하거나 취업 준비활동을 하거나, 또는 단순히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도 이 방법을 활용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집을 집이 아닌 공간으로 인식해 보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노력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휴식시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잘' 쉴 수 있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집돌이, 집순이 동지 여러분. 내일은 잠시 집을 나섰다가 집을 닮은 새로운 공간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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