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냐, 행복이냐.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풀이 가득 자란 공터나 숲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보았던 경험. 어릴 적 네잎클로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몇 달을 여기저기 들쑤시며 찾아 헤매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가 무엇이 그리도 슬펐기에 행운을 필요로 했을까 싶어 코끝이 시큰해지네요. 저의 어린 시절은 분명 평탄치는 않았습니다. 극도로 외로웠던 시기가 많았죠. 제가 네잎클로버를 찾아 해가 질 때까지 땅을 기어 다녔던 건, 자고 일어나면 쓸쓸함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행운을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운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모든 걸 운에 맡겨서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도 성취해 내기 어려운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노력을 통해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그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당신의 능력이었냐고, 노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이루어진 건 운이 아니냐고 말이죠.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떠한 노력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한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못하고 좌절한 채로 주저앉아 있는 건 정녕 노력하지 않은 탓일까요?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조금이나마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 절망에 빠진 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밖에,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 볼 건 "어쩌면 할 수 있는 게 조금이나마 있을 수 있다"라는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운이 나빠서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 수 있어요. 운이 나빠서 팔다리를 못 쓰게 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으며, 큰 좌절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행운은 나를 저버리더라도, 삶은 아직 내 곁에 있기 때문이죠. 차라리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어쨌든 아직 살아있다면 적어도 삶은 나의 편으로 남아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절망에 빠질지 아닐지는 운에 달렸을지라도, 그곳에서 계속 머무를지 아니면 벗어날지는 결국 나의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네잎클로버를 찾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 발견했다면 저는 더욱 운에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코 운에 맡겨 일을 처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해 보고, 할 수 없는 일은 일단 미뤄둬요. 솔직히 말하면 아예 포기해버렸던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한 포기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나중에는 할 수 있게 될 수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일은 또 어떻게 해야 좀 더 능률이 오를지 생각해 봅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요청해요. 나의 부족함을 외면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운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다 써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운은 제 것이 아니므로 관심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네잎클로버에서 잎 하나를 떼면 세잎 클로버가 되죠.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네잎클로버를 찾겠다는 생각을 지우고 나면 수많은 세잎 클로버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맹목적으로 행운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벗어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만약 우연히, 제가 네잎클로버를 찾게 되는 날이 온다면, 저는 잠깐의 고민은 하겠지만 이내 곧 잎 하나를 떼어낼 겁니다. 제겐 세잎클로버면 충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