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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pr 05. 2022

상담자의 자격에 관하여.

국민청원 <누구를 위한 심리상다마입니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처음 상담이란 영역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일찍 상담이라는 서비스를 알았다면 참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청소년들에게 상담이라는 서비스를 알리고, 직접 상담자가 되어 도움을 전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진로일 수도 있습니다. 상담이란 활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련과 공부가 필요한지는 딱히 고려하지 않고서 결정했었기 때문이죠.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되어서야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4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죠. "지금의 나는 충분히 좋은 상담자로서, 좋은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대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니." 학부 졸업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 관련 실습을 해보긴 했으나 저는 여전히 상담이라는 걸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에 대해 무지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고, 공감을 하는 데 미숙했으며, 상담에 필요한 과학적인 근거 또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대학원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로 인해 두려움이 컸었습니다. 대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대학원으로 끌려간다거나, 대학원생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등 마치 지옥인 것처럼 묘사되는 소문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제가 몸을 담았던 대학원은 무시무시한 곳은 아니었어요. 여러모로 힘든 점은 분명히 있었으나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저는 좋은 상담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전문지식과 태도, 윤리적인 가치관과 실습 경험 등의 자원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지금도 의문이 듭니다. 지금의 나는 과연 좋은 상담자인가? 도움이 되는 상담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습니다. 초심 상담자는 당연히 숙련된 상담자보다 기술적으로나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초심 상담자도 전문가로서 현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문가라고 불려도 부끄럽지 않을 기본은 갖추어야 하죠.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석사학위를 취득하고서도 기본이 다 갖추어지진 못한 듯합니다. 그냥 저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분명히 충분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느낍니다.



석사학위를 취득하고서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데, 만약 학부 졸업만 한 사람이 상담을 한다면 어떨까요? 저로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물론 학부생들 중에서도 좋은 상담자로서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실제로 석사학위를 가진 저보다 상담을 더 잘해낼 수 있는 학부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실습 기간을 가지진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이론과 실제는 다릅니다. 이론적으로 공부를 성실히 한 학생은 웬만한 전문가들에게 지식 면에서는 밀리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이론을 활용하는 법을 몰라서야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국회에서 두 법안이 발의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심리상담사법안(최종윤 의원 등 10인, 더불어민주당)>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에 관한 법률안(전봉민 의원 등 10인, 국민의힘)>입니다. 두 법안은 사실상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발의한 정당이 다르네요. 두 법안 모두 우리나라의 상담사들이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문성 확보에 문제가 있어요. 따라서 한국임상심리학회에서 국민청원을 게시하였고, 한국심리학회 전체에서도 두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어제인 4월 4일부터 4월 8일까지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단시위도 진행한다고 하네요.



<심리상담사법안>의 주요한 문제는 심리학 관련 학사 학위만 취득해도 상담 관련 시설에서 5년 이상 심리 상담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다면 심리 상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상담 관련 시설'의 기준은 상당히 모호합니다. 실제로 국가 공인 자격을 가지지 않은 상담자가 운영하는 상담 관련 시설이 상당히 많고, 아예 상담과 관련된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 운영하는 시설도 꽤 많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상담 관련 시설로 인정할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게 쉽지 않죠. 혹자는 그래도 심리 상담 업무를 5년 이상이나 했으니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해줘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5년 이상의 심리상담 업무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단지 지식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학부생이더라도 개인적으로 얼마나 공부했는지에 따라선 대학원생보다 전문지식을 더 잘 갖출 수도 있어요. 그러나 대학원생으로서 경험하는 실무 업무, 상담 실습, 학회 활동, 슈퍼비전 등을 학부생이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심리상담사의 전문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국민 마음건강증진 및 심리상담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더욱 문제가 큽니다. 학부 졸업 후 관련 시설에서 3년 이상 심리상담사 업무 혹은 그에 유사한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으면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업무에 종사한 것으로는 자격 취득을 허용해선 안 됩니다. 반드시 상담업무에 종사해야만 하고, 단지 업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감독인 슈퍼비전도 반드시 받아야만 합니다. 두 법안 모두 심리상담사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너무나도 아쉬운 법안입니다.



상담이라는 서비스는 단지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마음의 위로를 얻는 정도의 가벼운 느낌으로 접근할 주제가 아닙니다. 한 번의 상담이 한 사람에게 있어 인생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고, 전문적이지 않은 상담으로 인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모든 서비스가 전문성을 확보할수록 좋은 건 당연하겠지만, 상담은 특히나 전문성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전문적이지 않은 상담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전문성을 충분히 갖춘 상담자들은 자신이 하는 상담이라는 행위에 부여된 책임의 무게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섣불리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은 통과되지 않길 바랍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심리학은 예전보다 대중성을 얻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아지고, 전문가들도 사람들의 마음건강을 지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상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편함도 시간이 갈수록 해소되어 가는 걸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성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상담자들이 매우 많아요. 제대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두 법안의 입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혹시나 상담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상담자가 충분히 자격을 갖춘 전문가이길 바라신다면, 국민청원에 동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60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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