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기억]
2주 동안 내내 <두더지 잡기>라는 책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두더지 사냥꾼으로 살아온 시인이 쓴 에세이입니다. 책에는 삶을 진지하게 고찰한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심어져 있었고, 저자인 마크 헤이머의 언어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내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실들은 죄다 가장 재미있는 순간들과 가장 재미없는 순간들뿐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그것이 내가 봤거나 기억하는 무언가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주었거나 연관되었기에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두더지 잡기>, 18p
기억은 감정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강렬한 사건은 쉽게 기억에서 잊히지 않아요. 물론 감정적인 요소가 매우 적은 피상적인 사건과 정보도 우리 기억에 남지만, 감정의 기억에 비하면 기억의 질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의 에피소드였다는 걸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때론 그 감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하지만요.
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인생의 가장 앞부분인 기억은 7~8살쯤이에요. 이 무렵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님의 집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은 어린 형과 저를 제대로 케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조부모님은 굉장히 일찍 잠에 드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땐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주무셨죠. 저는 낯선 장소, 어두운 공간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걸 기억합니다. 어둠이 무서웠고, 부모님과 떨어졌다는 사실이 두려웠죠.
사실 이 기억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이 기억이 되살아나기 전엔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죠. 무려 8년가량의 기억이 없는 채로 살다가, 위의 일을 기억해 내게 되었죠.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도 유쾌하진 않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다음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다음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건너 뜁니다. 각 시기마다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있죠. 감정과 연결된 기억들로요.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시나요? 그 기억에는 어떤 감정이 연결되어 있나요? 잠에 들려고 누우면 갑자기 떠올라 잠을 설치게 만드는 기억이 있나요? 친구들과 만나면 늘 반복하는 예전 에피소드가 있나요? 누군가를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추억이 있나요? 그 기억들에 섞여 있는 여러분의 감정이 어쩌면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이해되지 않을 때,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할 때면 우선 그 감정과 연결된 기억을 찾아보며 스스로를 좀 더 이해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