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애 May 11. 2022

행복과 불행을 예측해야 하나?

[예측의 위험성]

세상은 불안으로 가득합니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나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지, 내가 산 주식이 오를지 떨어질지, 우리는 수많은 걱정과 고민에 둘러싸여 내일을 두려워하곤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미완성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패턴을 형성해서 기승전결을 다듬고, 각각의 요소를 파악하여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사람에 따라 취향은 조금씩 다를 테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나 소설 등 스토리를 접할 때 열린 결말보다는 분명한 끝맺음이 있는 걸 선호합니다. 열린 결말을 더 선호하거나, 딱히 어떤 결말이든 상관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거나 주어진 정보 안에서 결말을 유추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편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이 주어지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삶은 결말이 어떻게 지어질지 유추해 내기 어려운, 앞으로 일어날 일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은 스토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합니다. 최대한 통제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만큼은 루틴을 만들고,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말이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지, 어떻게 하면 덜 불행할지 끊임없이 예측합니다. 그리고 이를 심리학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덜 불행한지 인과관계를 밝히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예측한다면 우린 좀 더 행복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충북대학교 심리학과 정수근 교수님은 [팬데믹 브레인]이라는 책에서 다음의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기 충격을 예상할 수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 통증 및 스트레스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예상 못했을 때 충격을 받으면 예상했을 때보다 통증에 반응하는 뇌 영역이 더 강하게 활성화된다.

-<팬데믹 브레인>, 69p




이 실험에 대해 "물리적으로 동일한 강도의 충격을 받더라도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일 때 더 고통스럽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기 충격을 받을 확률이 50%인 불확실한 상황보다 차라리 100% 무조건 받게 될 상황일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예측할 수 있을 때 줄어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불확실함은 우리의 고통을 키운다고 봐도 될 듯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양상이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정재승 교수님의 책, [열두 발자국]에는 영국의 신경과학자 볼프람 슐츠의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원숭이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합니다. 이때 원숭이들이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기 충격을 가하면, 원숭이들이 제법 견딜 만해 한다는 걸 관찰합니다. 그런데 30초 후에 전기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예측하지 못하게 줄 때보다 훨씬 약한 전기 충격을 주었을 때 이 30초의 시간을 원숭이들은 지옥과도 같은 고통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당장 10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을지, 30초 후에 5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을지 원숭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다들 지금 전기 충격을 받겠다고 선택한다고 합니다.


두 실험의 결과를 결합하여 유추해 본다면, 100% 확실한 고통보다 올지 안 올지 불확실한 고통이 더 괴롭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똑같이 100% 확실한 고통이라면, 지금 당장의 고통보다 30초 후의 고통이 더 괴롭습니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고통과 30초 후의 확실한 고통을 비교하면 무엇이 더 괴로울까요? 이에 대한 실험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원숭이들이 갑작스러운 고통을 힘들지만 견뎌낸 것처럼, 우리 인간도 불의의 고통에 잠시 괴롭긴 하겠지만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30초 후의 확실한 고통이 가장 괴로울 듯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볼프람 슐츠의 원숭이 실험은 쾌감에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쾌감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우선 이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원숭이들에게 컴퓨터 화면을 통해 여러 도형을 보여줍니다. 그중 특정 도형을 클릭하면 오렌지주스를 다섯 방울 입에 넣어 줍니다. 원숭이들은 이 과제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해야 오렌지주스를 먹을 수 있는지 학습하고, 반복해서 특정 도형을 찾아 클릭합니다.


그런데 실험자가 변화를 줍니다. 원숭이가 특정 도형을 클릭했을 때, 오렌지주스를 두 방울만 줍니다. 이때 원숭이는 쾌감이 아닌, 실망감이라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기대한 만큼 주스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럼 똑같이 다섯 방울을 주는 동안에는 원숭이가 계속 즐거웠을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최초의 기쁨과는 양상이 다릅니다. 오렌지주스 다섯 방울을 먹는 방법을 학습한 원숭이는 이제 특정 도형을 클릭한 그 순간, 곧 주스가 나올 거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쾌감을 느낍니다. 이후 오렌지주스가 실제로 나와 다섯 방울을 먹는 그 순간에는 오히려 평상시와 다름없는 기분 상태를 보입니다. 즉 더 이상 주스를 먹어서 기쁜 게 아닌, 주스를 먹을 거라고 기대해서 기쁜 상태가 되는 겁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이 실험의 결과를 보고,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열두 발자국>, 179p



불행과 고통을 예측하는 게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험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자세는 성취를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행복을 예측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우리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과도하게, 일상의 모든 일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는 건 위의 실험들이 말해주듯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행복과 불행의 예측, 그로 인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양상을 나타낼까요? 위에서 언급한 실험의 결과가 세상의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객관적인 데이터로서 하나의 의견을 내어놓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적절하리라 생각합니다. 충분히 반대되는 의견과 실험 결과도 나올 수 있고, 그 또한 존중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행복과 불행을 예측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예측하기보단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길 선호하시나요?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을 테고, 중요한 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 보는 시간이지 않을까요? 이 글의 결말도 어쩌면 열린 결말이겠습니다. 여러분을 불편하게 한 건 아니길 바라며,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