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기 위한 타인과의 만남]
[안될과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대칭성'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영상을 봤다. 이 영상을 보던 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글로 정리해보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대칭성'이라는 개념과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대칭성이라는 개념은 참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지금도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혹은 세상의 구조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인 듯한데, 너무 대략적으로 이해한 거라 빠진 설명이 많을 것이다. 대칭성의 종류도 참 많더라. C 대칭, P 대칭, T 대칭, 이들이 연합된 CP 대칭, CPT 대칭, 게이지 대칭성 등 어려운 개념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대칭성이 깨져야 관측이 가능하다'라는 설명이었다. 이때 거울 앞으로 다가가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영상(?)이 나왔다. 정확히는 영상은 아닌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애니메이션 같은 게 나왔다. 고양이는 거울 앞에 섰고 거울 속엔 똑같은 모습의 고양이가 비치고 있었다. 고양이가 거울에 앞발을 대는 순간 빛이 번쩍 났다. 이때 빛이 '매개 입자'라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 이 빛 덕분에 우리가 관측을 할 수 있단다. 그리고 고양이가 거울에 손을 댄 게 거울을 깨는 행위(?)라고 설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즉 거울이 깨진다(대칭성이 깨진다), 그 순간 빛이 난다(매개 입자가 존재한다), 진짜 고양이를 관측한다(현상을 관측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듯했다.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칭성은 계속 변화를 하고 있어도 변화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즉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관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나의 일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완벽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꽤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꽤 대칭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는 건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여기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이것저것 시도도 다양하게 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 성장을 하고 있는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게 참 어렵다. '성장'이라는 현상이 관측되지가 않는다. 1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다른 점을 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심지어 5년 전의 나와 비교해도 거의 비슷하다고 느낀다. 대칭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내게 "못 본 새에 되게 차분해졌네?"라고 말했다. 그 친구와 자주 놀았던 13년 전의 나는 꽤 정신없는 편이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차분해지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고도, 그리고 성숙해진 면이 분명히 있다고도 말해주었다. 이 순간 나는 내가 꾸준히 성장해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대칭성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빛을 대신하여 '친구'라는 매개 입자가 '성장'이라는 현상을 관측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심리학에서는 자아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생물학적 조건, 신체적 조건, 물리적 조건을 시작으로 문화나 사회 구조 등의 내가 속한 환경, 직업이나 인간관계 등 나와 연결된 조건까지 고려해야 할 게 아주 많다. 친구를 통해 성장한 자신을 알아차린 에피소드는 '사회적 자아'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사회적 자아는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참고하여 형성하는 자아다. 이 사회적 자아와 관련하여,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게 있다.
거울 자아 이론은 마치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듯,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자아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바라봐 주고 기대해 주면, 스스로도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성장과 변화라는 부분에 있어 타인이라는 거울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 나를 비춰보지 않고서는 지금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이 반드시 객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결국 타인들도 자신만의 주관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나와는 다른 관점이고,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을 때 주관에서 객관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나 자신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혼자서는 나의 절반도 이해하기 어렵다. 가능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게 더욱 좋다. 이미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람들에겐 이미 나를 충분히 비춰봤을 테니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아주 어려운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무리해서 억지로 만나라고 권할 마음은 없다. 다만 아주 천천히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려는 시도는 해보길 바란다. 내가 앞으로 만날 불특정 다수 중에서 어떠한 한 사람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보물과도 같은 강점을 발견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