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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02. 2021

앵무새 벗어나기

'생각'이담긴 언어활동은 왜필요한가?

앵무새의 언어활동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를 볼 때마다, 어떻게 새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함을 느낀다. 처음 앵무새가 말하는 걸 봤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어릴 때였는데, 그땐 새의 몸 안에 녹음기를 넣어둔 줄 알았다.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어떻게 학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배우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배운 적도 없는 말을 하는 앵무새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앵무새는 배운 말만 끊임없이 되뇐다. 상황이 달라져도, 자기 앞에 있는 대상이 달라져도 같은 말만 반복한다.


  앵무새와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겠지만, 사람들 중에서도 '생각'이 없거나 아주 조금의 생각만을 하고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 심지어 그 말을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사람, 자기 생각만 맞고 다른 사람들의 말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등 앵무새와 대화하는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가진 대표적인 특징을 떠올려보면, '내로남불', '내 말이 맞아', '전문가가 말했어'로 골라볼 수 있겠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앵무새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 알고 있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글감으로 사용하시길 바란다.




내로남불의 심리. 귀인 편향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했던 착한 일과 나쁜 일을 적어보라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시간을 주고 적어보도록 했더니 착한 일 2 : 나쁜 일 1의 비율로 적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한 착한 일과 나쁜 일을 적어보게 한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하게 했더니 1:1 정도의 비율로 착한 일과 나쁜 일을 한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와 비교하여 자기 자신은 착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는 '행위자-관찰자 귀인 편향'으로 위와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 상황을 해석하고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해석을 위한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귀인'은 원인을 찾고 일어난 결과에 짜 맞추는 사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인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이기도 하다.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전조를 알아차리고 좀 더 빨리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사람은 원인을 찾고자 한다.

  '귀인 편향'이라는 건 귀인, 즉 원인을 결과에 연결하려고 할 때 객관적이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다는 의미이다. 편향되는 양상은 외적 요인으로 기울어지냐, 내적 요인으로 기울어지냐로 나타난다. 외적 요인은 상황적인 원인으로, '교통 체증이 심해서 지각했다',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지'와 같이 생각하는 게 해당한다. 내적 요인은 개인적인 원인으로, '내가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 '내가 꾼 꿈을 기억하지 못해서 로또에 당첨되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는 게 해당한다.

  '행위자-관찰자 귀인 편향'은 행위자로서 자기 행동의 원인을 찾을 때와 관찰자로서 다른 사람 행동의 원인을 찾을 때 방식이 다르다는 걸 설명한다. 바로 여기서 '내로남불'이 일어난다. 한 가지 간단한 예시를 만들어 보자.


  회사원인 A 씨는 출근 시간을 30분이나 넘기고서 회사에 도착했다. 차장으로 승진한 A 씨는 어젯밤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달렸더니 아직도 정신이 없다. 출근하자마자 부장님에게 불려 가 잔소리를 듣는다. 부장님이 "뭐하느라 30분이나 늦었어요? 승진하자마자 이러면 어떡합니까?"라고 하자 A 씨는 "제가 오래간만에 술을 많이 마셨더니 몸이 많이 지쳤나 봅니다. 저 원래 지각하고, 그런 사람 아닌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설명한다. 부장님이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시고도 잘만 출근한다면서 더 격하게 잔소리를 쏟아낸다. A 씨는 속으로 '사람이 술 마시면 늦을 수도 있지. 되게 뭐라고 하네.'라며 분을 삭인다. 
  몇 개월 뒤, A 씨는 입사한 뒤로 한 번도 지각한 적 없었던 B 대리를 따로 보자며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B 대리가 최초로 10분 정도 지각을 한 것이다. A 씨는 B 대리에게 "사람이 그렇게 게을러서 어떡하냐. 3분도 말이 안 되는데 10분 지각이라니. 게으른 사람한테 뭘 믿고 맡길 수 있겠냐"라며 구박한다. B 대리는 며칠 전부터 위독하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밤새고 정시 출근하는 사람도 널렸다며, 변명하지 말라고 말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게으른 데다 변명까지 일삼다니, 인성이 안 갖춰졌구먼.'

  누구나 자기 자신의 상황은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한 수 있는 원인도 폭넓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쾰른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봤듯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믿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내가 문제'가 아닌 '탓'할 거리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그만큼 열심일 이유가 없다. 특히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낯선 사람에 대해선 '좋은 사람'으로 믿어줄 만한 동기부여가 일어나기 어렵다. 나는 '사랑을 선택한 비련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남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랑을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 사람'인 게 더 편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실컷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내 말이 무조건 맞아. 확증 편향


  '확증 편향'은 쉽게 말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게 돼도 자신이 가진 믿음이 옳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성이다. 며칠 전에 발행한 글인 [쌓인 책더미가 의미하는 건]에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대해 얘기했었다. 이 이론은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로 자주 설명되는데, 만약 여우가 갖은 노력을 다해 포도를 따는 데 성공했다면, 그리고 다른 여우에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더 쉽게 딸 수 있는 데다 훨씬 달콤하기도 한 포도가 있다는 걸 들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포도를 딴 여우는 '흥, 괜히 내가 딴 포도를 못 먹으니까 심술부리네. 내가 딴 포도가 해랑 가까워서 훨씬 달고 맛있을 게 분명해.'라고 확증 편향을 보이지 않을까.

  확증 편향은 다음으로 이야기할 '전문가가 말했어'와 합쳐져 더욱 강력해지기도 한다. 물론 자기 의견을 반박하는 전문가의 소견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전문가 의견이나 책을 근거로 '내 말이 맞다니까!'라고 주장한다. 개그계의 대부인 이경규 님의 명언을 되새겨야 한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섭다."


  확증 편향이 꼭 무식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식인일수록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식을 쌓아온 오랜 노력과 경력이 '내가 옳다'는 신념을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전문가일수록, 한 분야의 대가일수록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의심하기 어렵다. 나 또한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진다는 걸 느끼곤 한다. '나 때는 말이야'가 입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 때면 아차 싶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나 때' 뿐이니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무식한 사람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는 게 생겼을 때,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 또한 다시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도록 명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가라면 일단 믿고 본다. 후광 효과


  전문가는 일반인에 비해 분명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아는 건 정확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불린다. 그러나 일반인을 기만하는 '가짜 전문가'도 숨어서 함께 전문가로 불리고 있다. 올해 들어 '학위 논문 표절'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학위 논문을 잘 썼다고 좋은 전문가로 인정받는 건 아니겠지만, 거짓으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을 전문가로 인정할 수는 없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후광 효과'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한두 가지의 일부 특성으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걸 의미한다. 이 효과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는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라고 볼 수 있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가 사용하는 운동 장비는 다른 제품에 비해 질적으로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가전제품이라면? 연예인이 모델인 에어컨이 그렇지 않은 에어컨보다 좋을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몸값이 높은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쓸 수 있는 대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많은 비용을 투여할 수 있으니 질적으로도 좋은 제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연예인과 제품의 질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

  전문가의 말뿐만 아니라, 그저 아는 지인에게서 들은 정보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평소 평판이 나쁜 지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소중한 친구니까', '평소 인덕이 높은 분이니까', '예전에도 나를 도와줬던 사람이어서' 쉽게 믿어 버리곤 한다. 이 경우, 전문가의 말을 믿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지인의 말만 듣고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에 전재산을 부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주 옛날부터 들려왔다. 설령 전문가의 말이더라도 스스로 한 번 더 검증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많이 공부해야 하고,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도 많이 써야 한다.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믿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만약 내가 믿은 그 말이 잘못된 것이었을 때, 내가 겪게 될 어려움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책임져야만 한다.




앵무새가 아닌, 사람다운 말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쓰다 보니, 앵무새에 비유하는 게 그다지 적절하진 않다는 게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진작에 그리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래에 있는 의식의 흐름으로 쓴 글이니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앵무새 사진을 봄 -> 앵무새=남의 말로만 말함 -> 대화한다면 답답함 -> 내가 생각하는 답답한 사람들]


  나에게만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말만 맞다고 우기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며 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극복 방법은 오롯이 '듣기'이다.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경청'이다. 경청하는 자세가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해줄 필요가 있다. 좋은 사람까진 아니더라도 '중립'을 지키는 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해보자. 변명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이유로 문제가 일어났다고 설명하는지 경청하자. 그리고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도 이 사람과 같은 문제를 겪진 않았을지 상상해보자. 그럴 것 같다면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나였다면 문제를 현명하게 잘 해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사람에게도 당신의 현명한 대처법을 알려주자.

  나의 의견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의 말도 맞다고 가정하고 들어 보자. 특히 인생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내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대신 둘 중 무엇이 좀 더 그럴싸한지 마음속으로만 비교하라. 이기는 게 목표인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의견을 갖고 있다고 느껴져도 그냥 놔두자.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서 걱정이 되고 옳은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엔 그냥 놔두자. 도움이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해 도우면 된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서 어떤 어려움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면? 시련과 역경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다른 사람들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뺏을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전문가라도 틀릴 수 있다는 걸 늘 명심하자.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이론이 어느 순간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성공하는 줄 알았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늦잠 자는 새들도 나름 만족스럽게 살기도 한다. 자신이 전문가라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는지 항상 점검할 수는 없더라도 가능한 자주 확인하려고 시도하자. 나의 한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자. 그리고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나와 대립하는 의견을 가진 전문가와 친하게 지내는 게 좋다. 그래야 내 지식이 더 견고하고 올바르게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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