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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07. 2021

엄마가 필요했어요.

애착 유형으로 본 나의 마음

나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9살 때의 기억이다. 9살 이전에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부모님이 알려준 내용으로만 알고 있다. 낯가림이 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다. 주로 집에서 홀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생이, 9살이 되었을 때 또래 아이들로부터 배척당했다. 그러고 텅 빈 집으로 들어설 때면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다.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하는 나이에, 나는 기댈 곳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에게 힘든 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어린 내가 봐도 부모님은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투정 부려도 어차피 부모님은 내일 아침이면 다시 내 곁을 떠날 것이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비어있을 거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 가득히 채워져 있는 힘든 일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을 여는 게 두려웠다. 어릴 땐 몰랐지만, 지금은 내가 애정결핍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임을 안다. 어차피 날 떠날 사람이라면, 나도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잘 지내보려고 애써도 될까 말까 한 인간관계를 나는 절대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 고집부렸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지?'라는 뻔뻔한 의문을 지니고서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나만의 방에 자리 잡고 앉아,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서 나를 지키려 했다. 오히려 나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것인 줄도 모르고.




성인 애착 유형


  태어나서 2~3살이 될 때까지의 시기가 부모와의 애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좀 더 좁게 출생 후 1년까지로 볼 수도 있고, 넉넉하게 3~4살까지로 볼 수도 있다. 애착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가 어떤 식으로 부모와, 특히 어머니와 애착을 형성하는가가 이 아이가 가지게 될 세상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미친다. 믿음을 다시 나눠보면,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나눠볼 수 있다.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가 곧 그 아이가 경험하는 세계가 된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유형은 성인이 된 후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고 밝혀졌다. 이를 '성인 애착 유형'이라고 이름 붙였다. 부모가 충실히 실행해야 할 역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이다. 부모는 아이가 인생 전반에 걸쳐 겪을 인간관계 자체에 반드시 영향을 주게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착 유형은 크게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뉜다. 그리고 불안정 애착은 다시 '불안 애착'과 '회피 애착'으로 나뉜다.


  어떤 유형의 애착이 형성되는지는 아이가 가진 기질도 중요한 요인일 수 있지만, 어머니가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보여줘야 하는 반응은 아이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다. 즉, 아이가 어머니를 찾으면 곁에 있어주고, 배가 고프면 배를 채워주고, 울음을 터뜨리면 달래주는 것과 같은 반응들이다. 아이의 요구를 받아들여주고 친밀함을 전해주는 반응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면 아이는 어머니와 안정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안정 애착'을 성공적으로 형성한 아이는 말 그대로 '안전 기지'를 확보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아이는 되돌아올 곳이 있으니 안심하고 탐험을 시작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잠시 자기 곁을 떠나도 일관되게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곧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진다. 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친밀한 사람들과 잠시 연락이 뜸해져도 관계가 깨지진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세상을 안전하다고 믿고, 타인은 신뢰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자존감이 높고 따뜻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이루는 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결과다.


  만약 어머니가 아이의 요구에 적절하게 반응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어머니를 신뢰하지 않는다. 즉,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다. 먼저 '불안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어머니가 당최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배를 채워주고 나를 향해 방긋 웃어주던 어머니가, 필사적으로 우는 나에게 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종종 배도 채워주지 않는다. 어머니가 미워질 때쯤 다시 내게 와 방긋 웃어준다.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점점 불안해진다. 어머니가 자기 앞에서 웃고 있어도 내일도 웃어줄지 아니면 내 곁에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 곁에 있을 때 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불안에 맞서 싸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써서 자기감정을 컨트롤하는 데까진 신경 쓰지 못한다. 감정조절이 어렵고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이제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우정을, 사랑을, 인정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최선을 다해 붙잡았음에도 누군가 자신을 밀어낸다면 크나큰 좌절에 빠져 금방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이가 아무리 배가 고프고 불편해도, 그래서 크게 울어도 어머니가 만족스럽게 반응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회피 애착'을 형성한다. 아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좌절을 이미 겪게 된다. 내가 아무리 울어도, 어머니를 애타게 찾아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게 된다. 이때 인간으로서의 생존 본능만이 아이를 지켜준다. 어머니의 보호 없이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을 키우게 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의존했다가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홀로 살아남으려 애를 쓴다. 낯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도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다가오려는 사람을 힘껏 밀쳐낸다.


  아이와 어머니의 애착 유형을 위에서 설명한 유형으로만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불안정 애착에는 '적대적 애착' 또는 '혼란 애착' 등 다른 유형이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애착 유형이 곧 한 사람의 인간관계 전부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떠한 인간관계를 맺고 경험하게 될지에는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능력 등 여러 심리적 상태', '환경적인 영향'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애착 유형은 한 사람의 인간관계 유형을 예측하는 중요한 요소가 틀림없다. 자신의 애착 유형을 확인하고자 할 때 주의할 점은 위에서 언급한 특징들로만 유형을 특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몇 가지 설명만으로 나의 성격을 모두 분석할 수 없듯, 애착 유형도 검증된 상담기관에서 심리검사와 면담을 통해서 확인하는 게 가장 좋다.




회피형 인간인 나에게 전하는 말


  나는 자라면서 점점 더 개인주의자가 되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다. 친한 친구들과는 비교적 스스럼없이 지내긴 했지만, 마음속으론 늘 끙끙대며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친구들은 나에게 마음이 상했던 적이 당연히 있을 테지만, 나 나름대로 친구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자그마한 거라도, 단 한 번이라도 미움을 받으면 나를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삐뚤어졌다. 늘 내가 1순위이고, 나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며 살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관계를 끊어내진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외로움이 해일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늘 관심과 인정이 고팠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해 주고, 곁에 남아줄 사람은 절대 없으리라는 믿음이 계속 홀로 살아남으려는 마음과 누군과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쥐락펴락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회피 애착 유형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위에 적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믿음과 생각들을 좀 더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가 회피 유형임을 나의 잘못된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하려 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원래 연락을 자주 확인하지 않아. 내 속마음을 얘기하라고 하지 마. 나는 회피 유형이란 말이야."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닌, 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로 사용하려 드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를 찾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해도 부족한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나는 회피 유형이라 힘드니까 너네들이 좀 이해해주고 맞춰 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분명 이런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속 그러지 않으려고 나를 점검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께선 어린 나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고 떳떳이 키우시려고 몸과 마음을 불사르며 일하셨다. 그 과정에서 내 곁에 많이 머물러주시진 못했지만, 나를 사랑하셨다는 건 의심할 여지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아이 같은 아버지, 형과 나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는 훌륭하게 나를 떳떳한 한 사람으로 키워내셨다. 지금 이 순간도 늘 내 걱정을 하며 잠이 드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의심해선 안 된다. 이렇게도 사랑받고 자란 나를,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이기적이고 까다로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 해준 친구들의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의심해선 안 된다. 감정을 억압할 줄만 알고 잘 표현하지 못하고, 내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채 어리광 부리는 나를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연인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나를 존중하려 한다.


  어릴 적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지금도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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