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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n 30. 2021

검은 왜가리의 사냥법

감정에 속지 않는 법

포식자의 함정


  서로 다른 동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냥을 한다. 새들도 참 종류가 많다. 어떤 새는 벌레를 먹기 위해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또 다른 새는 물가에서 자리 잡고 사냥을 한다. 그중에서 '검은 왜가리'의 사냥법이 굉장히 독특한 동시에 영리하다.


  검은 왜가리는 물가에 자리를 잡고서 날개를 둥글게 펼친다. 날개를 우산처럼 펼쳐서 그늘을 만든다. 그러면 어두운 곳에 숨기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좋은 휴식처인 줄 알고 몰려든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 물고기들도 벌써 밤이 된 줄 알고 몰려든다. 또한, 그늘이 져 빛이 반사되지 않아서 왜가리가 물속을 보기 쉽다는 이점도 있다. 자신의 사냥감을 직접 찾으면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히려 사냥감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든다. 물고기 입장에선 참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감정과 감정 패턴


  간단한 함정에 빠지는 물고기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람도 어떤 면에선 다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종종 감정과 잘못된 믿음이 만든 그늘에 어둠이 찾아온 줄 착각하곤 하지 않는가.


  모든 인간은 감정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 처하거나 자신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감정들을 느낀다. 때론 생각에 감정이 따라오기도 하고, 감정에 따라 생각이 흘러가기도 한다. 감정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생각과 행동, 나아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사람이 감정을 느끼지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서로 다르다. 귀여운 강아지를 보며 애틋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겠지만,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한 사람은 유쾌함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을 느낀다. 또한, 사람들마다 다른 감정들보다 더 자주, 강하게 느끼는 특정 감정이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자주 느끼게 만드는 감정 패턴을 가지고 있다.

  만약 자신이 가진 감정 패턴이 '무기력, 우울, 분노, 불안'같은, 조절하기 어렵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감정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면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검은 왜가리의 함정에 빠진 물고기처럼, 자신을 '불행'이라는 가짜 어둠에 빠뜨리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감정 패턴을 가지는 것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특정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패턴 속에 숨어 있는 함정이다. 예를 들어 '분노' 패턴을 가진 사람 A를 살펴보자. 

  A는 출근하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역시나 오늘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 막히는 전쟁을 겪는다. 내릴 곳에 도착하여 힘겹게 내리는 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5분 정도 통화하다가 친구가 "야, 잠깐만. 이따가 다시 걸게"라며 갑작스럽게 끊었다. 다시 화가 올라온다. 집에 와서 맥주 한 캔 하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사놓은 맥주가 떨어졌다. 또다시 화가 난다. TV를 틀어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는 데 딱히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은 정말 하루 종일 '빡이 치는' 하루라고 생각하며 분이 풀리지 않은 채 늦은 시간까지 잠을 설친다.

  몇몇 상황들에선 충분히 화가 날 만하다. 하지만 화가 반복되는 동안 점점 화를 낼 것까진 없는 상황에서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A의 입장에선 화가 난 근거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화가 안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예시이다 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패턴이 더 넓고 다양하게 나타나곤 한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중 갑자기 우울함이 찾아온다거나, 취업하지 못할까 봐 두렵던 사람이 취업 후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거나, 1년 365일이 모두 지루하고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 패턴에 사로잡혀 힘겨워한다.




감정 패턴이 만드는 함정, '가짜 감정'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X라는 특정한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강하고 빈번하게 느끼는 건 그 감정에 민감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감정을 느끼는 데도 X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짜 감정'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선 가짜 감정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X라는 감정을 느끼는 게 너무나도 불편하고 부적절하다고 느껴 좀 더 편안하고 위험 부담이 없는 감정으로 대체하려는 무의식적인 방어 시스템으로 인해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내가 느꼈던 가짜 감정에 대한 일화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고등학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Z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친구와 노는 게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내가 많이 우울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우울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었던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심리학을 통해 내 감정을 올바르게 느끼게 되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Z라는 친구의 말을 조심성 없이 험하게 하고 등이나 팔뚝을 손으로 치는 행동이 매우 불쾌했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함께 노는 게 거북하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나는 부족한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 내가 참고 맞춰줘야만 내 곁에 있어 줄 거야'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Z에 대해 불쾌함을 가지면 안 될 거라는 무의식적인 마음이 Z의 탓이 아닌, '내가 우울해서'라며 내 탓을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분노'라는 진짜 감정을 '우울'이라는 가짜 감정으로 덮었었다.


  나의 우울이라는 가짜 감정은 나 자신을 더욱 약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좋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우울해서'라며 내 탓을 하는 습관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정말로 우울했던 순간도 있지만, 늘 우울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우울해도 괜찮다'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감정과 친해지는 법, '감정 일기'


  가짜 감정에 속지 않으려면 그 속에 숨은 진짜 감정을 발굴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가짜든 진짜든 우선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한 과정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이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감정 단어 목록'을 이용하길 바란다.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적게는 2~30개 목록부터 많게는 50개 이상의 목록이 있다. 감정 인식 연습이 낯선 분들에겐 20개 정도의 목록을 추천한다. 아마 20개의 감정 단어도 다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첫 번째, 하루 일과 돌아보기.

  여러분의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고, 각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그냥 머리로 생각만 하기보다는 글로 적는 게 가장 좋다. 기억나는 데로 최대한 많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적어보자. 이야기를 구성하듯이 '인물, 배경, 사건'의 요소를 갖추도록 적으면 좋다. 그리고 각 사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보자. 감정 단어 목록을 보면서 가장 알맞은 감정을 골라보자. 각 사건마다 꼭 하나의 감정만 골라야 하는 건 아니다. 해당한다고 느끼는 모든 감정을 골라보자.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적어보자.


    [점심시간에 A, B라는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때 내가 느낀 감정은 '답답함, 짜증, 불편함,               지루함, 여유로움, 당혹스러움'이었다.]


  두 번째, 감정 파악하기.

  사건에 대한 감정을 골랐다면 이제 감정을 파헤쳐볼 순서이다. 자신은 어째서 그 사건을 겪을 때 그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적어보라. 예를 들어, 위의 예시에선 직장 동료의 특정 행동으로 인해 여러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또는 식사를 했던 식당의 특징이 감정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고, 이외에도 여러 이유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감정+생각 찾기.

  감정은 늘 생각과 함께 움직인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느낀다면 '아오, 저걸 확'이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복수할지 또는 어떻게 엮이지 않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열등감 또는 무기력감을 느낄 때면 '내가 그렇지 뭐.' 등 여러 생각이 든다. 위에서 적어본 감정들에는 어떤 생각들이 함께 존재하는지 찾아보고 적어보자. 그러고 나면 내가 느낀 감정이 충분히 타당한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이 상황에서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꼈지?"라며 감정을 느낀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 그 감정을 느낀 다른 상황을 찾아보면 좋다. 그때와 이번 사건의 공통점을 찾으면 감정의 이유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감정 일기 쓰기'를 반복 연습하면 점점 자신의 감정을 순간순간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는 가짜 감정을 파악할 순 없다. 그렇지만 일단 가짜든 진짜든 감정이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가짜 감정을 찾기 위해선 좀 더 다양한 자기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은 감정과 친해지도록 하자. 간혹 자아성찰 능력이 좋은 사람들 중에선 감정과 친해지는 것만으로도 가지고 있던 감정적인 고민을 대부분 해소해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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