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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n 28. 2021

세 살 기억, 여든까지 간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첫 번째'


  우리 삶에서 '첫' 뭐시기는 항상 마음 깊이 남는다. 첫 등교일, 첫 번째 친구, 첫사랑 등 잊지 못할 첫 번째들이 있다. 이후로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해도 첫 번째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가장 어릴 적 기억 중 시간적으로 첫 번째인 기억을 심리학에선 첫 기억 또는 초기 기억이라고 한다. 초기 기억은 어른이 된 후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 이론가들마다 조금씩 입장은 다르지만,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심리학자들은 이 초기 기억을 통해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려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 교육이 평생 남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세 살'일까? 출생부터 세 살까지의 기간이 부모와 아이가 '애착'을 맺는 결정적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른이 되고 나서의 삶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건,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내가 가지는 '나, 타인, 세상'에 대한 믿음과 인간관계 방식,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초기 기억을 통해 알고자 하는 건 곧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에선 이를 '성인애착 유형'이라고 한다.




첫 기억으로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내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은 9살 때의 기억이다. 그 이전의 기억은 없다. 오직 부모님이 알려 주신 내용으로 '그랬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초기 기억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걸 돕는 책을 쓴 케빈 리먼은《나를 발견하는 여행 》에서 '8살 이전의 기억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 했다. 그러니 9살의 기억이더라도 살펴볼 필요는 충분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겨우 남은 기억은 왕따를 당했던 기억이다. 내 첫 기억 속 풍경은 교실이다. 나는 중간보다 좀 더 뒤쪽, 운동장 쪽으로 창이 난 벽 쪽에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웃으며 놀고 있다. 내 주변 10m 내에는 아무도 없다. 간혹 몇몇 아이들이 내 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비웃음, 조롱,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고개를 숙이고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남몰래 살피는 내 모습을 느낀다. 담임 선생님의 한심하다는 눈빛도 느낀다. 이게 내가 가진 첫 기억이다.


  이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고, 주로 나를 괴롭혔던 아이가 짝이었던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와 짝이 된 여학생을 쳐다보지도, 한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의 과거 경험을 알지 못하는 나의 짝은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으리라. 끝내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담임 선생님에게 짝을 바꿔 달라는,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요청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여자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그 시절이 아직도 괴롭게 남아 있다. 


  케빈 리먼은《나를 발견하는 여행 》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자신이 가진 '사적 논리'를 알아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적 논리는《미움받을 용기 》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심리학자 아들러가 만든 용어이다. 쉽게 말해 '마음 깊이 박혀 있는 절대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첫 기억은 내가 뭔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믿게끔 만들었다. '그냥 나는 미움을 받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주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 늘 바빠서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에 외로운 내 마음이 달래 지진 않았다. 결국 첫 기억은 나에게 ‘나는 외로워야 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이야’라는 말도 안 되는 ‘사적 논리’를 믿게 만들었고, 인간관계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외로움에 인간관계를 끊지 못하고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게 만들었다.


  반복해서 겪는 인간관계 문제가 있다면, 한 번쯤은 어린 시절을 돌아보길 바란다. 특히 '부모와 함께 무언가를 했던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기억이 남아 있고, 그 기억이 어째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지, 의미를 찾아보길 바란다. 기억 속 내가 느꼈던 느낌을 지금 현재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부모님에게 혼났던 기억은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갔던 사람은 어른이 되고서도 새로운 일에 쉽게 도전하는 적극성을 보이곤 한다. 여러분이 가진 두드러지는 특징과 어린 시절 기억의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여러분이 어떤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발견하는 과정


  어린 시절의 기억들로 현재 내 모습을 짜 맞춰보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위에서 말했던 '초기 기억'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뿐만 아니라 과거 전체를 돌아보고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모두 살펴볼 수도 있다. 이러한 기억은 '핵심 기억'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자. 초기 기억과 핵심 기억 모두 어떠한 사건에 관한 기억으로 골라보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혼자 있는 기억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특정한 활동을 했던 사건이 좋다. 이때를 떠올렸을 때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지 살펴보자. 최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 있었고, 어느 계절 또는 하루 중 어느 시간대였는지, 무얼 하고 있었고, 그걸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최근 이 기억 속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 있었는지 살펴보자. 찾았다면 두 사건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연결해보자. 이 과정을 통해 여러분에게 특히 불편한 사람이나 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점검해볼 수 있다. 그리고 태도가 만들어진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트라우마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에 전문가의 조력 없이 섣불리 떠올리는 건 위험하다. 나 또한 위의 사건이 트라우마 사건이지만, 비교적 잘 해소된 상태에서 안전하게 떠올렸다. 그러니 만약 트라우마가 있다면 뒤에 설명한 다른 방법으로 넘어가자.


  다음으로, '출생순위'이다. 모든 사람에게 100% 일치하진 않지만 출생 순서, 즉 형제자매 중 몇째로 태어났는가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완벽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주로 동생들에게 뺏긴 부모의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완벽해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수 있다.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아이는 '내 것'에 대한 소유욕이 매우 강한 경향을 보인다. 자신은 첫째에게서 물려받은 물건을 쓰지만 막내에겐 새로운 물건을 사주는 부모를 보며 '내 건 내가 지켜야 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생존해내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조율하는 뛰어난 협상가로 자라기도 한다. 막내는 보통 자존감이 높다. 아낌없이 사랑을 받았고 일반적으로 막내에겐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부모님의 이러한 태도를 '방임'으로 느껴 애정에 목말라하기도 한다. 막내는 위의 형제들을 보며 부모에게서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비슷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배워 반대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외동아이는 첫째의 특성과 막내의 특성을 고루 보일 수 있다.


  출생순위에 따른 특성에 대해선 믿을 만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첫째 같은 막내'나 '막내 같은 첫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특성이 반드시 늘 정답인 건 아니다. 다만 50%보다는 높은 가능성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 한 번 확인해보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다. 출생순위보다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태도가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부모가 첫째 아이를 막내처럼 키우거나, 막내를 첫째처럼 대할 때 '첫째 같은 막내, 막내 같은 첫째'로 자라게 된다. 이 양육 방식 및 태도가 위에서 말했던 '애착 유형'을 만든다. 초기 기억, 출생순위보다도 애착 유형이 지금 내 모습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애착 유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글로 적어보기로 하고 마치고자 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 분들이 계시다면 케빈 리먼의 《나를 발견하는 여행 》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야말로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래서 자유와 만족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현재 내가 가진 ‘인간관계 방식’, ‘관심사’, ‘성격’, ‘감정처리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과 더욱 친해지길 항상 응원한다.



참고] 케빈 리먼,《나를 발견하는 여행 》, 비전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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