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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19. 2022

애는 착해. 그런데 눈치가 좀 없지...

<눈치와 심리학>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로 많이 듣고 자란 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릴 때는 "남자답게"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어떤 게 남자다운 건지 고민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었습니다. 좀 더 자라고 나서는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라는 말을 주로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한 건 아닌데,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으나 이런 말을 듣지 않을 정도는 아닌 듯해서 머쓱하기도 하네요. 성인이 되고난 후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 참 눈치 없다"였습니다. 한 친구는 제게 "넌 참 애는 착하고 좋은데, 눈치가 왜 이렇게 없지?"라고 말하기도 했죠. 몹시 불쾌한 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애는 착하다고 해줘서 고맙기도 합니다.

'눈치'는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 적응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으며,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눈치는 빠를수록 좋아요. 눈치 없는 사람은 어디서든 손해를 보기 쉽고, 눈치가 빠른 사람에게 뒤치질 가능성이 있기도 하죠.

눈치는 한국인에게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화적 행동이라고 봅니다. 눈치라는 한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려면 꽤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되어야 할 겁니다. 눈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도 어렵죠. 그냥 본능적으로 하는 거지, 지식으로서 배우고 실천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북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계시는 허재홍 교수님은 '눈치 척도'를 개발했습니다. 눈치라는 한국인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훈련하여, 환자들이 삶에 적응할 수 있게 돕고자 하셨습니다. 척도 개발과 더불어, 눈치 수준의 차이에 대한 탐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눈치 수준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생활 만족도를 보인다고 하네요.

《한국인의 비밀 무기_눈치》의 저자 유니 홍은 눈치에 두 가지 기본 법칙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해요. 누군가 지시했을 수도 있고, 그곳의 규칙일 수도 있을 겁니다. 군 복무 시절 일명 '스턴' 또는 '락다운', '얼음땡'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오후 6시에 태극기를 내릴 때는 국기 방향으로 경례를 하며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때 갓 전입신고를 한 이등병 중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하다가 몸을 움직여 혼이 나기도 했던 게 기억나네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일단 주변을 살피고 빠르게 동작을 따라하는 건 눈치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의문점이 생길 때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며 기다리는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꽤 많은 경우 일단 침묵하고 주변 상황을 살피며 분위기에 맞추고 있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 앞선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는 거죠.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잘 모르는 낯선 상황에 처하자마자 질문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천천히 분위기에 맞추고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그 이유를 질문하는 게 훨씬 적절할 때가 많습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해야 할 말은 적절한 타이밍에 할 수 있는 것 또한 눈치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죠.

이유도 모른 채 주변에 맞추고, 하고 싶은 말도 억제하는 건 상당히 불편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한 일일 수도 있죠. 하지만 눈치를 발휘하기 위해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유니 홍은 강조합니다.

예전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러 복지관에 갔을 때, 강의를 시작하기 위해 교육장으로 들어선 제 앞에는 왠지 싸한 분위기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덩치가 저보다 훨씬 큰 남학생과 상당히 왜소한 남학생 둘이서 서로를 경계하며 노려보고 있었죠. 다른 학생들은 살짝 거리를 두고 그 둘을 지켜보고 있더군요. 한 마디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말고 다른 선생님 한 분이 제게 황급히 달려오더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 불편하고 답답한 상황을 충분히 견디지 못하고, "왜 이러고 있는 거예요?"라고 급하게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께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일단 상황부터 진정시켜야죠!"라고 짜증섞인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제 자신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는 일이 적고, 정확도도 낮습니다. 대화의 흐름을 끊게 되는 일도 간혹 생기고, 부적절한 행동 또는 장난을 치다가 친구의 화를 돋우기도 하죠. 가장 치명적으로는 심각한 상황에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는 부분입니다.

눈치를 기르기 위해 중요한 건 관찰과 침묵입니다. 나의 욕구를 잠시 뒤로 미룬 채 주변과 타인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어야 눈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 눈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욕구가 너무 강하고 급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겠지만요. 만약 자신이 눈치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느긋하게 주변을 관찰하는 연습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어렵지만, 꾸준히 연습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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