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애 Aug 03. 2022

바빠야 한다면 놀기 바쁘면 좋겠다.

[감각과 정신 건강]


아주 오래전 캐나다의 맥길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벅슨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일명 '감각 빼앗기'라고 불린 실험입니다.


실험에 참가한 대상자들은 먼저 반투명의 안경을 쓰고, 면장갑과 딱딱한 손목 보호대, 그리고 에어컨을 크게 틀어 윙윙 소리가 나는 곳에 가만히 눕혀졌습니다. 안경 때문에 외부는 모두 흐릿하게 보이고, 팔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않았으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며 촉감을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누운 채로 연구자들이 밥을 갖다주면 받아먹기만 하고,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주 신경 써서 많은 감각을 차단한 것이죠.


실험 참가자들은 처음엔 아주 간단한 실험이라고 여겼습니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참가 수고비로 하루에 20달러를 받을 수 있었죠. 정말 누워서 돈 먹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험이 시작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참가자들은 괴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극도로 차단된 감각들로 인해 심한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죠.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해졌으며, 혼란을 겪게 되기도 했습니다. 몇몇 참가자들은 환각을 경험하고, 강렬하게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인지적으로도 변화를 보였습니다. 실험이 진행되는 틈틈이 간단한 계산 문제나 단어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실험 시간이 길어질수록 참가자들은 점점 테스트를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뇌파도 눈에 띄게 느려지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감각 정보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감각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우리의 정신건강이 치명적인 손상을 얻을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을 하려고 할 때도 경험한 감각을 토대로 떠올립니다. 감각 정보가 없을 때는 상상의 선명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며, 혼란과 정신착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부모는 '감각 놀이'를 많이 시켜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각이 아이의 인지적 발달과 감성 발달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유아기 시절 심심하게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둔하고 인지적으로는 또래 아이들보다 느린 경향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실컷 놀아야 합니다. 많은 걸 만지고, 보고, 듣고, 때론 입에 넣어 맛보거나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성숙한 어른이 될 준비를 본능적으로 합니다. 반드시 비싼 장난감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밖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고 또래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로 충분합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며 정상적인 성장을 해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심심해집니다. 놀이에서 빨리 졸업합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공감 능력을 상당히 잃게 되고, 인지발달이 지체되며, 늘 초조하고 쉽게 흥분하는 청소년이 되곤 합니다. 예전에도 다혈질에 사고뭉치인 청소년들은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 수가 늘어나면서, 요즘에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아진 걸 느낍니다. 놀이로부터 일찍 졸업을 당해 지루하게 자란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에서, 어린이를 어른들의 압박 속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방구뽕' 캐릭터를 구교환 배우님이 맡아 연기했습니다. 9화의 결말 부분에서, 어린이해방군총사령관 방구뽕은 말합니다. 어른이 된 후에 놀기엔 너무 늦다고 말이죠. 저는 4세 경의 어린 아이들부터, 초, 중, 고등학생들, 대학생과 취준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오며 그들의 성장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쉴 틈 없이 바쁜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어떤 고민과 좌절, 우울감에 시달리는지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세상을 원망하고 끝내 극단적인 시도를 반복하는 걸 봐왔습니다. 정말로 늦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는, 학업과 취업을 모두 끝낸 후에는 정말로 늦을지도 모릅니다. 그땐 한 아이가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도덕성에 있어 인지적 성숙과 공감 능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기에 도덕적인 규칙을 어기지 않아야겠다는 동기가 생겨나고, 인지적으로 충분히 성숙해야만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촉법소년'이라 불리는 어린아이들의 범죄 문제가 점차 심해지는 걸 보며, 한 편으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고 우려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심심하고 지루한 채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자꾸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잘 다뤄내지 못합니다.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고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른들도 심심하고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풍부한 감각으로부터 차단당한 채 사소한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메말라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차단되어 있는 감각의 통로를 다시 세상과 연결하여 우리의 마음을 일깨울 필요가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