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명료화를 통한 통찰과 학습>
1920년대부터 독일 베를린 대학교의 교수로서 많은 연구를 한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는 침팬지들의 학습을 주로 연구했습니다. 침팬지들도 충분히 학습을 해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졌고, 심지어 인간의 '통찰'과 같아 보이는 현상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쾰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학습이란 맹목적인 시도가 아닌 상황을 통찰하고 깨닫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통찰이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깨닫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과 상황, 특히 목적과의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심리학의 즐거움>, 24p
통찰에는 목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왜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은 걸까요? 운동을 잘하기 때문에? 유명해지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명예를 얻기 위해? 스포츠 선수가 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 저마다 모두 이유가 다를 겁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왜 나에게 필요한지 질문해야 합니다.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나와 가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아서? 돈은 누구나 좋아하고 당연히 많이 벌고 싶은 것이지만, 그 이유는 역시 저마다 다를 겁니다.
이런 식으로 목적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아차' 싶은 통찰이 따르곤 합니다. 예를 들어 단지 유명해지고 싶다는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면 굳이 스포츠 선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운동 종목으로, 내가 잘하는 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좀 더 스포츠에 전념할 수 있을 겁니다. 목적을 구체화할수록 더 높은 동기부여를 얻고 혹은 나와는 맞지 않았던 길에서 빨리 벗어나 제대로 된 항로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목적을 확실히 바로 세운 다음에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당장 스포츠단에 입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훈련하며 입단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해 보는 겁니다. 다행히도 유소년 팀에 포함이 되어있는 상황이라면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며 주어진 커리큘럼을 잘 수행해야겠죠. 목적이 분명해지고 지금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는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쾰러가 말한 통찰은 이때 번쩍 빛을 냅니다. 이것이야말로 '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쾰러는 침팬지들이 어떻게 통찰을 경험하는지 여러 차례 실험을 진행해서 밝혀냈습니다. 먼저 침팬지들을 꽤 오래 굶긴 다음, 바나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방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요즘에는 침팬지를 굶기는 잔인한 방식으로 실험을 하지 못하지만, 1900년대인 만큼 아직 동물권이 고려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쫄쫄 굶은 침팬지는 바나나를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뛰어오릅니다. 하지만 높이 매달린 바나나에 손이 닿지 않죠. 얼마 지나지 않아 침팬지는 격분하면서 짜증을 내다가 이내 지쳐 좌절한 채로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이때 방에 짧은 막대와 나무 상자를 넣어줍니다. 침팬지는 한참을 서성이다 나무 상자를 바나나 아래로 끌고 와 올라간 후 막대로 바나나를 건드려 떨어뜨리고, 먹는 데 성공합니다. 침팬지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바나나를 먹어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죠. 처음 화를 내며 이리저리 날뛸 때는 아직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자 '지금 이 짜증 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무 상자와 막대가 눈에 띄었을 겁니다. 침팬지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채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여 통찰에 도달한 것이죠. 그 결과로 높이 매달린 바나나를 먹는 방법을 학습해낸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공부를 합니다. 청소년기에만 무려 12년, 요즘은 대학교도 웬만하면 일단 가고 보는 세상이니 일반적으로 16년 이상을 공부에 매진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학원까지 가게 되면 더 길어지겠죠. 저도 학생 신분으로 20년 정도를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더 공부를 해야만 하겠죠. 이렇게 길고 긴 공부의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학습을 이루어낸 경험은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아마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다시 한번 목적을 되새겨보며, 통찰을 통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