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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08. 2022

좋고 나쁨이 아닌, 옳고 그름

<긍정과 부정에 대한 이해>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말하곤 합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죠. 그럼 우리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래전부터 인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에 관해 깊이 탐구해왔습니다. 목표는 행복에 이르는 것이었죠. 하지만 최근 심리학에선 조금 다른 관점이 제안되기도 합니다. 행복을 목표로 두었을 때 불행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참으로 모호하고 불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이에요.

목표를 세울 때는 몇 가지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구체적이어야 하고, 수행을 측정 가능해야 하고, 지금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현실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목표는 어떤가요? 어떠한 원칙에도 부합하다고 보기에 애매합니다. 좋지 않은 목표라는 것이죠. 원칙에 맞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고 막막한 기분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한 마디로 불행에 좀 더 가까워지고 마는 거죠.

하지만 행복이란 목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행복을 바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목표로 두지 않고도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심리학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신건강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 - )를 없애 ( 0 )으로 되돌리는 접근을 취해왔습니다. 그러다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면서 ( 0 )에서 ( + )로 끌어올려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접근이 대두되었죠.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상태는 ( + )에 해당합니다. 가능하면 ( - )에서 바로 ( + )로 올라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급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포인트는 ( 0 )에 해당하는 상태를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 )에 머물게 되면 ( + )까지 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 0 )의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다면 비교적 쉽게 ( + )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 0 )의 상태가 바로 진짜 '긍정'입니다. 흔히 긍정을 ( + )의 상태로 생각하곤 하지만, 진짜 긍정은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은 평형의 상태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 - )를 제거하려 했던 접근이 결코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게 아닙니다. 이는 사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화시키는 접근법이었으니까요. 다만 긍정심리학이 등장하며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이유는, 긍정의 상태까지는 달성했는데 그 후에 이 이로운 상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충분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긍정심리학은 우리가 가진 긍정의 상태, 왜곡되거나 부적절한 부분 없이 옳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제안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좋고, 나쁨'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입니다. 긍정적으로 산다는 건 불행한 일에도 행복한 척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내고, 기쁠 땐 아끼지 말고 웃으라는 겁니다. 부정은 반대로 기쁠 때 웃지 못하고, 슬플 때 억지로 웃는 걸 말하죠. 내 경험과 감정이, 생각이 왜곡되거나 부적절하게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삶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으로 더 많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더욱 괴롭고 슬플 수 있죠.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하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야 덜 슬프고,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긍정보다는 부정의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얼마나 세상을 올바르게, 균형 있게 바라보고 있나요? 타인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왜곡 없이 바라볼 수 있나요? 100% 객관적으로 혹은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건 안타깝게도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세상을, 경험을, 인간을 과거 기억에 의존하여 판단하니까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모두 각자의 주관 속에서 살아가기에 다툼은 사라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해서, 올바른 시각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섣부른 포기입니다. 100점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공부를 포기해 50점을 받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서 80점을 받는 게 후회를 덜 남길 테니까요.

세상을, 타인을, 자기 자신을,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긍정할 수 있기를, 균형을 잡고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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