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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11. 2021

부,부.. 부탁... 이영어로 뭐지?

나는 왜 부탁하는 게 어려울까

부탁하면 자존심 상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어렵다. 나의 무능력함을 증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다면 굳이 부탁할 이유가 없다는 게, 내 기분에 대한 근거다. 마음속에서 "너 혼자 못하니까 부탁하는구나?"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인즉슨 "너는 그것도 혼자서 못하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능력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무럭무럭 자라왔다.


  나의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럼 남들보다 잘하려고 되게 애쓰면서 살아왔겠네?"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대답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공부할 마음이 들어도 애써 외면하면서 게임에 집중했다.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도 일부러 잠을 잤다. 정말 말 그대로 '이 악물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공부할 마음이 든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내 타고난 능력이 많이 부족하여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했는 데도 안 되면 절망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을 미뤘다. 그러면서 '나는 노력만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무능력함'에 대한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 생각하면, 단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뻥 차 버린 꼴이다. 최근 3년간 '고등학생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뿌리 깊은 열등감은 '부탁'을 금기시하게끔 만들었다. 부탁하는 순간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 해선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부탁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참 미숙했다.




인간적인 사람이 되려고 해


  '인간적이다'라는 건 어떤 뜻인가? '인간답다', '인간스럽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즉,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간에 서로 다른 특징이 있고, 인간이 아닌 것에는 없지만 인간에게는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허점이 보이는 사람'에게 "너 참 인간적이구나"라고 말해주곤 했다. 자잘한 실수를 하거나, 의외의 모습을 보일 때도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을 썼었다. 예를 들어,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사람이 연인 앞에서는 쩔쩔매는 모습을 보았을 때, 또는 도도하고 시크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이 발을 헛디뎌 트위스트를 출 때 등. 그리고 나는 이렇게 인간적인 사람들을 좋아했다. 일명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불편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나를 업신여길 것만 같았던 걸까.


  불현듯 아차 싶은 마음이 떠오른다. 나는 인간적인 사람들을 좋아하면서, 나 자신은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 '초인', '탈인간', 또는 '초고교급'(이 표현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몰래 반가움을 전한다.)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었다. 만약 탈인간이 되는 게 가능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인간적인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허점이 있다'라는 게 정말 인간적인 특징일까? 인간 외의 존재에겐 허점이 없을까? 인간이 아닌 존재는 무수히 많겠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기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계는 약점이나 허점이 없는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여러 약점들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기계는 연료가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과학 기술로 '무한동력은 불가능하다'라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모든 기계는 결국 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줘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기계도 고장이 난다. 시스템도 오류를 일으킨다. 세월이 지나면 인간처럼 노쇠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존재들이 있겠지만, 과연 약점이 없는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환상을 뒤쫓고 있었던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설령 약점이 없는 존재가 있다 한들, 적어도 인간 중에서는 없다. 그리고 나는 딱히 '인간이길 포기하겠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부탁은 인간적인 행동이야


  부탁은 몸소 앞장서서 내 약점을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탁이 그리도 어려웠나 보다. 하지만 이제는 약점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그리고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으로 인해 많이 느꼈다. 또한, 내가 그다지 무능력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엘리트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한 정도는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은 평범 이하에 머물러 있지만, 그건 내가 노력을 미뤄왔기 때문이다. 이젠 노력한다면 평범한 인간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평범'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을 미루지 않으려 노력하고자 한다.


  만약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자 한다면, 부탁을 하는 게 아주 좋은 '관계의 윤활유'가 된다. 부탁을 한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나의 요청에 응하면 감사함을 느낀다. 감사한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예전의 나처럼 비뚤어져서 '저 사람이 이 빚으로 나를 이용할 거야!'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탁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도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기억이 남게 된다. 즉, 상대방이 자신을 긍정적인 인상으로 평가해줄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그리고 사람은 의외로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기쁜 감정을 넓은 의미로 느낀다. 자신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다른 사람의 기뻐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쁨을 느낀다. 실제로 나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했던 이타적인 행동은 인간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할 기회는 주는 '부탁하기'는, 상대방이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실천할 수도 있는 행위이다.


  서로 싸웠을 때, 지난 과거의 아픔을 나누었을 때,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시간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친구가 된다. 부탁은 궁극적으로 "우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까?"를 묻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부탁을 할 수 없는 관계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니 나는 내일 내가 할 일 좀 대신해달라고 부탁해보려 한다. 결코 내가 그냥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좀 더 친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 아주 조금만 귀찮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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