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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22. 2021

'나를 믿는다'는 건 뭘까?

믿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스스로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믿는가? 나는 나를 믿지 않기도 하고, 일정 부분 믿기도 한다.


  나는 나의 의지력을 믿지 않는다. 열정을 불태우며 성실하게 일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란 말은 내게 피곤한 느낌을 준다. 가능한 편하게 살자는 게 내 인생 모토다. 그럼 뒹굴거리는 데 열정적인 게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다. 아니다. 나는 뒹굴거리는 것마저 대충 한다. 제대로 쉬면 피로라도 풀 텐데, 아무리 쉬어도 피로는 그대로다. 일에선 도무지 최선을 다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내 의지력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의 습관을 믿는다. 습관은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다. 만들어진 습관을 실행하는 데 의지력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아예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비교적 적은 의지력만으로도 행동을 가능케 하는 게 습관이다. 의지력을 믿지 않는 나는 더욱 습관을 믿는다. 이렇게 내가 매일 짧게나마 글을 쓰는 일도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습관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여기서도 나의 약한 의지력은 분명 걸림돌이 된다. 그렇지만 의지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의지력을 덜 쓰고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까진 잘 진행되고 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의 어떤 점을 믿는가? 전체적인 '나' 자체를 믿는가? 아니면 자신의 그 무엇도 믿지 않는가? 아마 다양한 대답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나처럼 부분적으로 떼어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떼어내지 않은 '전체로서의 나'를 볼 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믿지만 현재의 나는 믿지 않는 등 시점을 기준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또한, '믿는다'의 의미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무엇을 보고서 우리는 '나를 믿는다'라고 말하는 걸까? 자신이 가진 생각이 옳다는 믿음, 자신이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 자신은 반드시 성공할 사람이라는 믿음. 여러분에겐 어떤 믿음이 있는가.




믿음의 의미


  애초에 믿는다는 건 뭘까? 어떤 사실을 믿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믿고 안 믿고를 판단하는 걸까? 어떠한 현상에 대한 증거를 보고서 판단하리라 생각한다. 믿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하다. 가끔 "믿는다는 건 증거가 없어도 무조건 믿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다. 내겐 증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의 습관을 믿는 이유도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와는 별개로 습관은 작동한다는 증거. 내가 나의 의지력을 믿지 않는 이유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의지력을 발휘하여 성공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귀납적인 추론을 통해 믿음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철저한 경험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일지라도 내겐 경험이 중요하다. 나에게 있어 믿음이란 '예측 정확성' 또는 '일관성'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믿는 건 착각에 가깝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멋져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허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근거가 없는 자신감이라는 게 밝혀지면 자신감이 없는 사람보다도 철저히 무시당할 수 있다. 차라리 '척'하는 것일 뿐인 허세라면 자기 자신은 진실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 괜찮다. 그러나 정말 마음 깊이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을 믿는 사람은 위험하다. 병적인 허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오래도록 사랑해줄 것이라 믿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이거나,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닐지라도 우리는 사랑의 증거를 분명 느낄 수 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 다정한 태도, 나와의 약속을 소중히 지키는 모습 등 사랑의 증거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사랑의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을 믿지 못한다. 믿음은 마음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이다. 믿음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증거가 있을 때 형성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


  사랑은 믿음 없인 유지될 수 없다. 그리고 믿는다는 건 증거를 확인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사랑의 증거를 확인해야만 한다.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견해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나는 방탄소년단이 본격적으로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된 시점이 'Love Yourself'를 테마로 잡고 앨범을 냈을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일명 '자존감 열풍'이 불고 있다. 여러 책들에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존감 대유행에 뜻밖의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두들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한다. 마치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 'Never', 'Must'만큼 우리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건 찾기 어렵다. 자존감을 키운다면 물론 좋다. 높은 자존감에 따라오는 긍정적인 효과들은 나열하기 피곤할 정도로 많다. 자존감이 높아서 손해 볼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자존감이 높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자존감이 낮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해도 괜찮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몇 가지 말할 수 있는가? 눈이 예뻐서, 코가 동그래서, 몸매가 보기 좋아서, 능력이 좋아서, 성격이 나와 잘 맞아서 등등등. 떠올려 보면 하나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이유가 사랑하는 데 있어 중요한가? 예쁜 외모가 그렇지 않게 되면 사랑할 수 없는가? 몸매가 바뀌면 사랑할 수 없는가? 능력을 잃으면 사랑할 수 없는가? 성격이 부딪히면 사랑할 수 없는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계속 사랑할 수 있다!'이다. 위에 나열한 조건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조건일 뿐이다. 피상적인 사랑의 조건이다. 사랑의 핵심에는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다. 상대방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발견하는 쾌락이 있다.


  자기 자신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건 누구인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이미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증거를 모두 가지고 있다. 나보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도 나만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평생을 함께 해줄 수 없다. 그럴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내 곁에 머물러주는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 기분은 어때? 오늘 하루는 어땠어? 힘들진 않았고? 내일은 어떻게 보낼 거야?" 나에게 물어봐주고, 다시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려고 시도할수록 우리는 자신과 더 친해진다. 사랑에 빠진다. 그 시간만큼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자존감이 높고 낮고는 부수적인 일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어떻게 높아졌는지 물어보라. 자존감이 낮다면 어떻게 낮아졌는지 물어보라. 사랑은 자존감을 키우는 게 아니다. 질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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