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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n 25. 2021

내가 '나'를 덕질하는 이유

'나'답게 사는 게 왜 중요할까?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거의 없다. 나는 어떤 식으로 자기소개를 했었는지 떠올려 본다. 이름, 나이, 성별, 사는 곳.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과 및 학년도 말했었다. 보통 자기소개 시간으로 3분 정도가 주어졌는데, 이 정도 말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 참 난감했다. 자기소개는 늘 불편하고 짜증 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를 남에게 알려줄 만큼 스스로를 알지 못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기소개를 글로 적어 봤으면 좋겠다. 과연 몇 분 동안 말할 수 있는 분량이 나오는지 확인해보자. 줄글을 적는 게 귀찮다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 키워드만 적어도 좋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름, 나이 등 항목으로 적어 보자. 나는 청소년 시절 10초면 끝나던 자기소개를, 이제는 3분을 채울 만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도 만약 3분을 채울 수 있다면 칭찬의 박수를 전해드리고 싶다. 일단 나의 박수는 전해드릴 방법이 없으니 스스로 박수를 쳐주면 좋겠다.


  도저히 3분을 채울 수 없겠다는 분들은 나를 토닥여 주자. "너무 나를 모른 채 살아왔구나.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구나."라고 스스로를 격려해주면 좋겠다. 나를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아무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을 수 있고,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그런 쓸데없는 걸 할 시간에 공부나 해."라고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부터는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처럼 나를 잘 모르고 살아도 괜찮을지. 지금부터는 여러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나를 알아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만 할까? 크게 두 가지로 말해보고 싶다.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다름 아닌 '나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나다운 삶'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함, 미래에 대한 불안,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인간관계 고민 등 막막한 주제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일란성쌍둥이조차도 완벽히 똑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직 '나의 삶'을 살아간다. 예전에 TV에서 사주가 똑같아서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는 두 남성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조차도 자세히 살펴볼수록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만약 복제인간을 만든다면? 자유롭게 살도록 허용한다면, 나는 분명 오리지널과 복제인간의 삶이 다를 것이라 확신한다. 유전적으로 같아도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산다면 삶은 같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의 삶'이 대체 어떤 삶인지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 부딪히고 견뎌내며 겪어야만 하는 삶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나의 삶'을 사는 주체인 '나'를 알아야만 한다.


  정체 모를 공허함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운 적 있었는가? 계속 반복되는 인간관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는가? 이 고민들의 원인이 모두 '나'를 모르기 때문이라곤 할 수 없다. 인생사란 복잡하게 꼬일 만큼 꼬인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이 분명 머리 아픈 고민들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심리학 이론들로 설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많은 심리상담 사례들로 증명되고 있다. 사고방식과 내면에 자리 잡은 신념이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인지치료 이론,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강조하는 대상관계 이론과 교류분석 이론, 인간의 긍정적인 잠재능력을 믿는 인간중심이론과 개인심리학 이론 모두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답지 않거나 또는 왜곡되어 있는'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심리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 또한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꿈이 생겼고, 타인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공허하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나'를 알아보자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몸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 그 재료가 되는 게 무엇이든 씨를 말려버린다는 게 우리나라, 열정 가득한 한국인이다. 자존감, 행복, 부자 되기 등의 키워드가 지배하고 있는 요즘도 뭐가 좋고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소문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를 아는 게 그렇게 몸에 좋다더라~"라고 말하고 싶다. 남의 말을 듣고 주식을 사면 낭패를 볼지도 모르지만, '나'에 대해 알아보는 시도를 한다고 해서 어떠한 손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덜 울고, 더 웃을 수 있게 된다.




'나'를 덕질하기 시작한 계기


  앞으로 '나'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하나씩 글을 써볼 예정이다. 그전에 이번 글은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고자 한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고 그저 나의 일기 같은 것이니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안 읽고 뒤로 가기를 눌러도 된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나'를 아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남들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될까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며 끝내 말하지 못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면서 스스로를 억누르려 했다. 이렇게 참고 참다가 크게 터질 때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화를 내는 잘못을 저질렀다. 낯선 사람들이 두려웠고, 부족하기만 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잘하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남들이 존경해줄 것 같은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나 하나. 교대는 고사하고 교육학과를 갈 성적도 안 되는 내가 선생님을 목표로 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자율전공학부로 대학에 입학했다. 자율전공학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경찰행정학과였다. 경찰이라는 직업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공무원이기도 해서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막연하게 나도 경찰행정학과를 목표로 수업을 골라 들었다. A도 받아봤다. 동시에 D도 받았다. 그리고 경찰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주 빠르게 깨달았다.


  1학년 2학기가 되어, '심리학개론'이라는 수업을 발견했다. 이때의 나에게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학문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꽤 재밌는 수업이라는 듯했다. 그래서 지루하고 답답한 법 공부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수강신청을 했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나'를 쫓아다니는 팬이 된 것은. 심리학은 처음으로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고 물어봐주었다. 어릴 때부터 질문을 받으면 어떡해서든 도망가려 애썼던 나인데, 이 질문에는 왜 그렇게까지 대답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면을 탐구하고자 하는 나의 기질이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이렇게 나는 심리학을 만났고, 어찌어찌 살다 보니 생업을 함께 하는 동반자처럼 되어버렸다.


  '나'에 대해 하나씩 이해하게 되면서 '나의 삶'도 되찾았다. 남들의 시선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않도록 스스로에 대한 검열도 낮추니 인간관계에서 내가 편한 것은 물론이고 관계의 깊이도 훨씬 깊어졌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안정적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안다. 그래서 하루 한 번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에 대해 전부 알지는 못한다. 아마 평생 모른 채로 남을 부분도 있을 것이다. 뭐, 그럼 어떠한가. 분명한 건 나는 '나'라는 최애를 덕질하는 것이 즐겁다. 나의 오늘 기분은 어떤지, 어떤 습관이 있는지, 계획된 스케줄은 무엇인지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늘 꽃길만 걷길 응원하지만 불행해져도 외면하지 않고 더욱 힘을 실어 응원한다. 앞으로도 나에게 '탈덕'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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