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철학의 정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독서감상문.

by 재애

내 삶에 필요한 질문들


오늘도 눈을 뜬 순간부터 침대 밖으로 나오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더 긴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고작 30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벌써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낡은 차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자동차로 치면 30년은 충분히 오래되고 낡을 수밖에 없는 기긴이긴 하지만. 대부분 침대 밖으로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지만, 때때로 '이러고 있지 말고 좀 일어나 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마음먹은 순간 침대 밖으로 나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손을 들고 질문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강제로 지목당해서 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부끄러워서 질문하지 않은 적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궁금한 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세상만사 관심이 없었고 귀찮았다. 그러다 보니 배우는 속도도 자연스레 늦은 편이었다. 뭐든지 겉핥기 식으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어떻게 하면 관심을 갖고 질문할 수 있을까?


걷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자라면서 당연하게 걷게 되었다. 눈을 뜨면 그냥 보였다. 듣기 싫어도 들렸다. 제대로 즐기거나 관심을 가진다는 게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나를 알고, 죽어갈지 알지 못한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철학은 곧 '사는 법'을 탐구하는 학문, '인생학'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저자가 선별한 여러 철학자들의 '인생학'을 들려주는 책이다. 각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기차 여행을 하는 저자는 철학자들의 책을 통해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만남을 이룬다. 이토록 솔직 담백하며 위트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니! 철학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면 영어를 배우겠다고 다짐할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다짐으로 영어공부를 배척해온 게 아니니까! 구글 번역기의 끝없는 발전을 응원한다.


저자는 가장 먼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 위대한 황제도 침대 밖으로 나오는 걸 힘들어했다며,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 혹시 황제 체질일지도?'라는 착각에 빠질 뻔했지만, 나의 착각은 금세 깨졌다. 왜냐하면 마르쿠스는 아침이 괴로워도 침대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긴, 황제 체질을 타고난다고 해서 모두가 황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 완전히 기대를 놓지는 말자고 마음먹어 본다.


마르쿠스 황제가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어째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침대 안에서 뒹굴대기 위해서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윽고 마르쿠스는 침대 밖으로 바로 빠져나온다. 그에겐 침대 밖에서 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외에도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경험하고, 고난에 직면하고,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모든 삶이 담겨 있다. 물론 특정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이지 않을지라도. 저자가 기차 여행을 하며 답을 구할 때 철학자들의 책을 펼쳤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펼쳐보며 도움을 요청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침대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사명이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나를 찾기 위한 철학


이 책은 '나'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해준다. '나 덕후', 자기 이해가 취미인 나의 마음이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책이다.


(p. 51)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몇 발짝 물러나야 한다.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철학과 대화는 사실상 동의어였다.
(p. 486) 거울을 보려면 반 발짝 물러서야 하듯이 몽테뉴도 스스로를 더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p. 54)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거울 없인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설령 거울이 있어도 제대로 보는 법을 모른다면 별로 나아질 게 없다. 너무 멀리서 보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너무 가까우면 아주 작은 일부분만 보일 뿐이다. 내 얼굴이 모두 보이게끔, 필요하다면 상반신까지도 보이게끔 거리를 둬야 한다. 때론 전신 거울로, 때론 손거울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다양한 거울로, 다양한 거리감으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 있다. '거리두기'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나는 거울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다. 그래도 거울을 보는 그 순간에는 꽤 시간을 들여서 나를 본다. '나는 누구인가?'를 매번 고민하며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이러한 질문을 하며 바라보려고 한다. 질문은 대화를 시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라는 질문은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데 있어 최고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p. 87) 걷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p. 101) 가장 느린 이동 형태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p. 134)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무엇을 보는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는가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p. 165) 우리가 듣는 음악은 우리가 입는 옷이나 우리가 모는 자동차, 우리가 마시는 와인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p. 222)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p. 347)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p. 439)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p. 445)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한 번에 한 붓질씩 자기 자화상을 그린다.


우리가 보고, 듣고, 관심을 기울이고, 곁에 두는 게 무엇인지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다. 우라의 걸음걸이가, 우리가 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더욱 뚜렷하게 자기 자신이 되어 간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한 이유는 틀림없이 자신을 아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위의 여러 단서들을 통해 나는 더욱 나 자신을 알아가 볼 예정이다. 두근두근한다. 역시 내가 가장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나는 어떻게 걷는지, 무엇을 관심 있게 보고 듣는지, 내 곁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 주로 어떤 행동을 하며 지내는지, 팬심을 두르고 덕질을 또 한 번 신나게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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