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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29. 2021

나답기도 힘든데 어떻게 맞추겠어요.

Nell, [한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인간에겐 다른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다. 독립적이거나 안하무인,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속 깊이 '인정'에 대한 갈망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소속감의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인정받는다는 건 결국 그들과 내가 '우리'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고, 어떤 집단에라도 소속되어야만 한다.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제압하여 자기에게 소속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지도자로 존경해주기를 바란다. 또 다른 사람은 모든 걸 양보한다. 부탁하는 걸 모두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은 내세우지 않는다. 모두 맞춰주려 한다. 음식 취향도, 휴식 방법도, 심지어는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서 우세한 것으로 맞추기까지 한다.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열심히 맞춰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친구들 중에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가 있었고, 그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미워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다소 약해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배려하고 눈치를 보는 건 남아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에 나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키지 않으면 체벌을 받았으니까 명령과도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알아서 잘하는 아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로 소개했다. 이 또한 나에겐 명령과도 다름없었다. 이를 지키지 않아도 어머니는 나를 체벌하지 않았다. 대신 나 자신이 스스로를 체벌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끊임없이 미움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 점점 나 자신을 찾을 기회를 잃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렀다. 극심한 우울감에 휩싸이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계에 이르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나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찾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무엇을 해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1인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남이 필요로 하는 모습'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아닌 모습을 조금씩 제외시켜 나가는 중이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기에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게 유지하고, 좋은 자식으로, 좋은 부모로, 좋은 부부로, 좋은 연인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적게는 3~4가지에서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게 된다.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따라 우리에게 요구되는 의무나 책임도 달라진다. 아쉽게도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실행할 수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완벽한 자녀도 없다. 아무리 열렬히 사랑하더라도 완벽한 연인일 수는 없다. 만약 완벽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거나, 아직 사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꽤 괜찮은' 성취를 이루는 게 한계다. 그 이상은 초인의 영역이다.


  Nell이 부른 [한계]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네가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이 같지 않다고 말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 '같지 않음'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걸 호소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그러니 다르다고 해서 혼나거나 미움을 살 이유는 없다. 틀린 거라면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다른 거라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노래의 가사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모두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한계에 이르렀던 내 심정을 토닥여준다. 잘못된 게 아니라고,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우리는 모두 일정 부분에서 부족한 사람이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SNS 상에 떠도는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들도 결국 인간이고,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나처럼 한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제 조금 짐을 덜어냈으면 좋겠다. 이만하면 충분히 애썼다. 나는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이제부터라도 '나다운 모습'을 찾아보자. 그래도 괜찮다. 전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미안해야 할 일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네가 필요로 하는 나의 모습이

같지가 않다는 것

잘못된 건 아니지 않나요 

미안할 일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왜 또 그렇게

자꾸 날 몰아세우는 건데

도대체 뭐를 더 어떻게 해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줄 수 없음에

미안해해야 하는 건

이제 그만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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