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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ug 09. 2021

아름다운 여름을 기억하는 법

자우림, [반딧불]

여름에 담긴 추억


  우리의 일생을 계절로 나눠본다면, '여름'은 '젊음'을 상징한다. 젊은 날의 추억은 여름과 맞닿아있다. 친구들과 엉뚱한 사고를 쳤던 기억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갔던 순간도, 뜨겁게 사랑했던 과거는 '여름이었다'를 붙이고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6월에 태어난 '여름 아이'다. 그래서인지 다행히도 더위에 강하다. 물론 그 대가로 추위에는 지독하게 약하다. 여름은 내게 소중한 추억이 많은 계절이다.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년 계곡으로 놀러 갔던 기억은 말 그대로 '청춘'이다. 비록 지금은 그때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들과 많이 멀어졌지만, 몇 년 후에 우연히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친구들이다. 내 인생 첫 연애, 첫 여자친구이자 지금도 여전히 내 여자친구인 그녀를 만난 것도 여름이었다. 연인이 되기로 약속한 그날도 여름이었다. 매년 여름, 우리는 기념일을 맞이한다.


  여름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밤은 짧아진다. 그런데 자우림은 [반딧불]에서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고 노래한다. 아마 여름밤은 조금이라도 더 추억을 쌓기 위해 쉽사리 잠들지 못해서, 늦은 밤까지 노래 부르며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여름밤은 아주 길고, 아주 아름다웠지 않을까. 자우림이 부른 [반딧불]을 듣고 있으면, 여름의 추억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사람들마다 떠올리는 풍경이 조금씩 다를 것 같다. 누군가는 캠프파이어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는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과일을 먹고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구경하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풍경이든, 분명 여러분들에게 소중한 기억일 것이다. 이 노래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




마음의 계절


  여러분들의 마음은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저마다 마음의 계절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을지라도 모든 게 같진 않을 것이다. 날씨도 다를 것이고, 계절이 주는 느낌도 다를 것이며, 그러므로 쌓이는 추억도 다를 것이다. 나는 지금 초여름에 진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이었다. 적당히 몸이 데워질 만큼 온난하지만,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만큼 덥진 않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 상당히 설레고 있다.


  내 마음의 계절이 초여름이라고 생각한 이유로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로는 날씨다. 내 마음은 지금 따뜻하다. 옷을 껴입거나 난방에 신경을 써서가 아닌, 날씨 자체가 매우 따뜻하다. 그러니 우선 가을과 겨울은 아니다. 둘째로는 시각적인 풍경이다. 가을과 겨울은 봄, 여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색 계열의 풍경을 띤다. 봄과 여름의 풍경에는 알록달록하게 많은 색채들이 퍼져 있다. 그러니 역시 가을과 겨울은 아니다. 셋째로는 행동이다. 우리는 계절마다 특정 행동을 하게 된다. 봄에는 꽃놀이를, 여름에는 피서를 즐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며, 겨울에는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는다.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꽃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이 더 적절하지 않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자 하는 동기는 어떤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더위를 피하고 시원함을 찾아 피서를 떠나듯이, 나는 게으름을 피하고 책임감을 찾아서 피태[避(달아날 피)怠(게으를 태)]를 떠나려 준비 중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굳이 꽃을 보려고, 단풍을 감상하려고, 추위를 피하려고 떠나지 않는다. 나는 여름에 떠나는 걸 좋아한다. 


  여름이 '젊음'을 상징하는 계절이라면, 몸은 늙었을지언정 내 마음만큼은 이제야 젊음을 발휘할 준비를 마쳤다. 우리들은 젊기에, 여름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젊음의 밤은 길다. 출발선에는 섰으나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발이 땅에 달라붙어 출발조차 못하고 끙끙댈 수도 있다. 젊음에 따르는 위기, 시련, 고통은 셀 수 없이 많다. 자우림이 '여름밤은 길었고'라고 노래한 이유에는 젊음을 만끽하며 잠들지 않았던 것뿐만 아니라, 괴로움에 잠들지 못했던 것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이 길고 길었음에도, '아름다웠고'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밤의 사이를 반짝이는 빛을 따라 거닐었'다고 노래한다. 우리의 밤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을 잘 둘러보고, 고개를 들어 꼭 하늘을 바라보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찾기 위해. 우리는 반짝이는 빛을 따라 거닐어야 한다.




반딧불, 반딧불


  어릴 적 시골에서 봤던 반딧불. 지금은 시골에서도 도통 만나기 어려운 반딧불은 온몸에 낭만을 가득히 품고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힘껏 빛을 내었다. 어린 시절 반딧불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할 것이다. 한 번쯤 반딧불을 다시 만나고 싶다. 우리가 젊음의 밤을 견뎌낸다면 희망찬 아침을 맞으며 서서히 밤을 잊어갈 것이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고 젊음의 끝자락에 섰을 때, 문득 지나 온 그 밤이 그리워질 때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따라 거닐었던 빛은 밤하늘의 별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흔들리던 반딧불이었음을.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밤의 사이를

반짝이는 빛을 따라 거닐었었고


떠다니는 별과 같은 반딧불 반딧불

쏟아지면 사라지리 애처로운 반딧불

여름밤의 사랑처럼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기억 속에 몸을 기대면

어느새 밤하늘 가득히 별이 내리고


떠다니는 별과 같은 우리들 우리들

쏟아지면 사라지리 아름다운 시간들

여름밤 반딧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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